[만남] 김영명 예올 이사장
재단 출범 20주년 특별전 개최
사직단·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문화유산 복원·정비로 시작
전통공예 후원·현대화 힘써
매년 ‘올해의 장인’ 선정
상품화·마케팅도 지원
공진원 ‘올해의 공예상’ 수상
“조연에 머물렀던 장인들에게
주인공 자리 주고 싶었다”

정치인 아내이자 재벌가 여성
우리문화 지킴이로 종횡무진
사진작가 꿈도 키워가
“50대에 명함 없는 서러움 느껴...
여사님 아닌 ‘작가님’으로 불러줬으면”

10월 26일 서울 북촌 예올북촌가에서 만난 김영명 예올 이사장. ⓒ홍수형 기자
10월 26일 서울 북촌 예올북촌가에서 만난 김영명 예올 이사장. ⓒ홍수형 기자

백자 달항아리, 자개, 한복... 한국 전통공예가 전 세계적인 인기다. 국제적 권위의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선 올해 말총공예 정다혜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재단은 2023년 한국 전통공예·미술 특별전 ‘한국 공예축전’ 개최를 추진 중이다.

김영명(66) 재단법인 예올 이사장은 한국 공예의 달라진 위상을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나라 작가들 작품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지요.”

그가 이끄는 예올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2002년 설립된 비영리재단이다. 2013년부터 매년 ‘올해의 장인’과 ‘젊은 공예인’을 선정해 후원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공예를 아우르는 전시, 세미나 등도 연다. 지난 9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는 ‘올해의 공예상’(매개 부문) 수상 단체로 선정됐다. “재단 출범 20주년을 맞아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예올한옥에서 열린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전시 전경. ⓒ예올 제공
서울 종로구 가회동 예올한옥에서 열린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전시 전경. ⓒ예올 제공

지난 10년간 진행한 ‘장인&디자이너 협업 프로젝트’로 호응을 얻었다. 생활고를 겪는 장인들, 전통의 현대화 의지가 강한 작가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해왔다. 우리 공예는 고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전통공예에 젊은 감각을 더해 일상에서 쓰기 좋은 물건들을 선보였다.

“조연에 머물렀던 전통공예 장인들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10대 때부터 수십 년간 공예에 매진한 분들인데도 열악한 환경에 머물러 계셨어요. 단순 후원만으론 그분들의 생활이 달라지지 않아요. 이분들이 주인공이 되길 바랐습니다. 젊은 공예가들과 협업해서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하고요. 저희가 브랜딩부터 마케팅, 판로 개척까지 도와요. 작은 것 하나라도 갖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물건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인들의 후원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예올의 지원을 받은 작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가구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이광호 작가(2014년 예올이 뽑은 젊은 공예인)는 디올·스와로브스키·아모레퍼시픽·펜디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금속에 자개를 한 땀 한 땀 끊어 붙이는 전통 끊음질 기법으로 작품을 만드는 김현주 전남대 미술학과 교수(2015년 예올이 뽑은 젊은 공예인)의 작품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 소장됐다. 허대춘·안이환 두석장(2017년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이 만든 포크, 가구 클립, 팔찌 등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튼튼하고 편리한 제품으로 입소문이 났다. 김영명 이사장은 “저희와 함께해온 작가들이 다 잘 되셔서 기쁘다”며 웃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예올가에서 열린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전시에선 예올과 함께한 장인·젊은 작가 18인의 아름다운 작업을 선보였다. 9월 초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에 맞춰 방한한 캐롤라인 브루주아 피노컬렉션 수석 큐레이터 등 해외 예술계 인사들 다수도 다녀갔다. 

9월 1일부터 10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예올북촌가에서 열린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전시 전경. 임정주(목공), 김상훈, 김현주(금속), 양유완(유리) 작가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예올 제공
9월 1일부터 10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예올북촌가에서 열린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전시 전경. 임정주(목공), 김상훈, 김현주(금속), 양유완(유리) 작가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예올 제공
(앞쪽) 허대춘·안이환 두석장(2017년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의 작품. ⓒ예올 제공
(앞쪽) 허대춘·안이환 두석장(2017년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의 작품. ⓒ예올 제공

‘예올’은 ‘예로부터 이어받아 온 우리 문화의 어여쁨을 귀하게 여겨 여기 오늘에 그리고 다가올 날에까지 올곧게 지켜 전한다’는 뜻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윤후명 작가가 지은 이름이다. 

김영명 이사장과 친언니 김녕자 초대 이사장(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부인) 등이 2002년 사단법인을 설립한 게 출발점이다. 한일월드컵이 열리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 문화재 안내판과 간판은 엉망이었다. 잘못된 외국어 표기나 상투적인 해설이 가득했다. 이를 바로잡자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었다. 

초기엔 우리 문화재 보호·정비에 중점을 뒀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국가 최고의 제례공간 중 하나인 사직단의 위상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방치된 채 물에 잠기고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복원에 10년간 매달린 곳도 예올이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여수 지역 문화재 안내판 개선 작업을 했고, 문화재청과 함께 1년간 문화재 관련 영문 번역어 기준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점차 외국인 대상 강좌, 청소년 대상 교육·봉사활동 운영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김영명 이사장이 취임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전통공예 후원에 나섰다. 앞으로도 “예올이 지닌 한정된 자원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곳을 선택해 집중”할 계획이다.

김영명 이사장은 예올을 꾸준히 돕는 이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개인 후원자만 900여 명. 직장인, 전문직, 연예인, 주부 등 다양한 이들이 한국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모였다. 대부분 여성이다. 보잉, 토즈(TOD′S), 반클리프 아펠 등 글로벌 기업들도 그간 후원에 동참했다. 올해부터는 샤넬이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전을 시작으로 5년간 지속적 후원을 약속했다. “명품사들과 한국 전통공예인들은 장인정신을 갖고 제품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우리 공예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더 널리 알릴 기회가 되길 바라요.” 

후원자들과 함께 해마다 알뜰시장도 연다. 수익금은 한국전통문화대 장학금으로 쓰인다. 코로나19 여파로 쉬었다가 오는 11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본점 컬쳐파크에서 2년 만에 다시 연다. “바쁘지만 설레요. 그런데 10년째 알뜰시장을 열었더니 이젠 더 내놓을 물건이 없네요. 하하하.”

2011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예올한옥에서 열린 알뜰시장. 앞치마를 맨 김영명(가운데) 이사가 손님들에게 물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철영 기자
2011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예올한옥에서 열린 알뜰시장. 앞치마를 맨 김영명(가운데) 이사가 손님들에게 물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철영 기자
10월 26일 서울 북촌 예올북촌가에서 만난 김영명 예올 이사장.  ⓒ홍수형 기자
10월 26일 서울 북촌 예올북촌가에서 만난 김영명 예올 이사장. ⓒ홍수형 기자 

김영명 이사장은 김동조(1918~2004) 전 외무부 장관의 막내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내다. 영어에 능통하다. 요즘도 예올이 펴낸 영문 도록을 손수 꼼꼼히 감수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외교관인 부모를 따라 약 20년간 외국 생활을 했다. 미 보스턴 웰즐리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힐러리 클린턴·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과 동문이다.

“정치 이론에 흥미를 느꼈지만 저는 정치를 안 좋아해요. 집안에 한 사람만 (정치활동을) 해도 충분한 것 같아요.” 옛이야기를 하며 웃던 김영명 이사장은 “사실 사진작가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어릴 적 화가를 꿈꿨다. 워싱턴의 아메리칸대에서 미술석사(MFA)를 마쳤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다가 취미로 틈틈이 찍던 사진에 빠졌다. 중앙대 사진아카데미 3년 과정을 수료하고 2017년 환갑 기념 개인전 ‘속치마’를 열었다. 겨울 숲을 배경으로 나뭇가지에 걸린 흰 속치마, 어둠 속에서 뒤틀린 채 조명을 받은 속치마가 애틋하고도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대학생 때, 눈 오는 날 흰 남자 셔츠를 나무에 걸어놓고 사진을 찍은 적 있어요. 개인전 주제를 고민하다가 그 사진을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 하셨어요. 다시 흰 옷을 가지고 촬영을 거듭하다가 제 한복 속치마를 찍기 시작했죠.” 2026년엔 칠순 기념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정치인의 아내로, 네 아이의 엄마로, 재벌가의 여성으로, 우리문화 지킴이로 분주하게 살아왔다. 휘황한 간판 뒤에 머무르기보다,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게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제가 오랫동안 명함 없이 살았어요. 50대 때 대학 동창회에 갔더니 다들 명함을 교환하며 자기가 하는 일을 얘기하는 거예요. 명함이 없는 저는 할 말이 없어서 대화가 끊기더라고요. 충격이었죠. 명함이 없으면 이렇구나.” 김영명 이사장은 “사람들이 앞으로 저를 여사님, 사모님이 아니라 ‘작가님’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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