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란 일종의 내기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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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기억하는 10대 때의 다이어트 체험은 어떤 것일까. 이정하(22·대학생)씨는 중학교 때까지 키 162cm, 45kg 정도였다. 모델처럼 마른 몸매는 아니었지만 날씬한 편이었고 이정하씨 본인도 외모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체중이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50kg이 넘어가면서 입학하면서 맞춘 교복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단순히 친구들과의 놀이 같은 거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살이 찐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 반쯤 장난으로 '우리도 한번 (다이어트를) 해보자'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쉬는 시간에 함께 운동장을 달렸지만 살을 빼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20대가 된 지금은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이 먹기 때문에 다시 살이 쪘다. 그러나 꼭 빼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이어트말고도 할 일이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날씬하지 않곤 자신감 가질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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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씬한 여성들이 너무나 많아 나도 그들처럼 되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21세의 회사원 김미소진씨는 현재 저녁 6시 이후에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방법을 택해 2달 동안 2kg을 감량했다. 또한 다리를 꼬고 앉으면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평소에 다리를 꼬지 않도록 노력하고, TV를 볼 때 다리를 움직여 운동하는 등 다이어트를 위한 생활 습관을 기르고 있다. 김씨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은 중 2때로, 친구들 사이에 핫팬츠가 유행이었는데 핫팬츠를 입으려고 하니 다리 살 때문에 입지 못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살을 빼기 위해 하루에 500개 이상 줄넘기를 1개월 동안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고, 헬스를 2달 했으나 이 역시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의 희망 몸무게는 47kg으로, 살을 빼서 예쁜 옷을 입고 싶다고 한다. 김씨는 “여유가 되면 요가나 재즈댄스를 배워 살을 빼고 싶다”전했다.

'생각은 20대, 몸은 40대' 환상 거품 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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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출근 직전 습관적으로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무려 15kg이 감량된 수치가 나오는 것 아닌가. 옆에 있던 남편이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이 직접 체중계에 올라가본 후 피식 웃었다. “체중계가 고장났다”며. 아마 이제 갓 돌을 넘긴 아들이 체중계를 못살게 굴었나 보다. 한 순간의 설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난 우리나라 보통여성들과 마찬가지로 10대 때부터 꾸준히 '머리' 속으론 다이어트를 해왔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진, 부끄럽게도. 결혼을 염두에 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다이어트였는데다가 다이어트 정보라면 귀가 상당히 얇아 온갖 방법을 일시적으로 시험해본 터라 그다지 효과도 보지 못했다. 30대 초반 페미니스트 저널 기자로 자리잡으면서 여성정체성과 다이어트의 함수관계(여름 무렵이면 으레 다루던 특집기사 주제였다)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이어트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했다. 그러다가 1995년 9월 중국 북경에서 열린 제4회 유엔 세계여성회의에 취재차 참석하면서 내 다이어트 전략은 획기적(?)인 계기를 맞았다. 세계 각국에서 참석한 여기자들은 선드레스의 거리낌없는 차림새에 그렇게 날렵하고 멋진 몸매일 수가 없었고, 그것이 곧바로 기자 경쟁력과 직결되는 듯이 보였다. 말하자면, 난 그때 처음으로 직업 경쟁력과 다이어트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여기자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북경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다이어트용 선식을 알게 됐고,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생각으로 두 달치 분량의 2상자를 구입했다.

귀국해서 달아본 내 몸무게는 70kg에 가까웠고, 난 우선 급한 대로 북경에서 산 선식에 나온 지침대로 끼니마다 밥 한 공기 먹는 셈치고 선식가루 한 봉지를 더운물에 죽처럼 푼 것과 반찬을 먹는 셈치고 상추, 배추 등의 줄거리를 고추장에 찍어 같이 먹었다. 처음엔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던 다이어트가 '밥과 상추쌈'이란 마인드 컨트롤 덕분인지 너무나 쉽게 됐고, 한 달간 이런 식사법을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하다 보니 무려 10kg 넘게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한 달을 더 계속했고, 최종적으로 두 달 남짓 기간에 20kg 넘는 감량에 성공해 사춘기 시절부터 그토록 꿈에 그리던 40kg대의 체중 수준에 들어섰다. 부수적 효과로 위장장애도 함께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도 이 같은 효과에 경악했고, 더러는 수기를 쓰라고 권유하는가 하면, 중국여행 가는 길이니 그 선식 상품명을 알려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난 2년여를 별 요요현상 없이 다이어트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예전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갖가지 옷들이 더 이상 불가능의 대상도 아니었고, 오히려 한번 시험적으로 입어보면 너무 잘 맞아 지갑을 끊임없이 열어야 한다는 게 고민거리였다. 날렵한 걸음걸이로 보도를 당당히 횡단하면서 새삼 '나'란 존재가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뒤늦은 결혼과 함께 다이어트 특수효과는 서서히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결혼 수개월 만에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 불어나기 시작했지만, 난 결혼생활이 주는 막연한 안도감 때문인지 가장과 직장 사이에서 스트레스의 일시적 현상 정도로 안이하게 간주해버렸다.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결국 예전 체중으로 돌아가버렸다.

남편은 신혼 초 내 첫인상이 “너무 파리해 보이고 히스테리컬해 보여 살 좀 쪘으면 했다”며 “이제야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은연중에 과체중의 방심을 부추겼다. 반면 40kg대의 환상적(?) 몸매를 익히 알던 지인들은 피임약 사용 여부에서 시작해 “결혼생활 스트레스 때문이냐”며 “정말 몰라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결혼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안 생기자, 난 그 원인을 수년 전의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막연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난 10여 년 가까이 간직해온 40kg대에 입던 옷들을 몽땅 처분해버렸다. 그동안은 옷장에 예전엔 충분히 입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결코 입을 수 없는, 다이어트 훈장 같은 그 옷들이 계속 걸려 있는 한 10여 년 전의 그 기적과 같은 다이어트 체험이 가능하리라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난 이제 불혹의 나이대로 접어들고 있지 않은가. 다이어트에 대한 과대 자신감도 이젠 거품을 좀 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현실의 내가 할 수 있는 역량과 한계를 이젠 정면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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