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손 진격 우크라이나,가을비 복병 만나 고전

우크라이나 전쟁 후 첫 곡물 수출선 라조니호 ⓒAP/뉴시스·여성신문
우크라이나 전쟁 후 첫 곡물 수출선 라조니호 ⓒAP/뉴시스·여성신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49일째인 30일(현지시각) 러시아는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재논의하기 위해 튀르키예(터키), 유엔과 접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흑해함대 공격에 우크라이나의 관여 여부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가 열려야 추가적인 협상이 가능하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타스통신, CNN,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흑해 곡물수출 협정에 관한 협상을 위해 "가까운 시기에 유엔과 튀르키예와 접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덴코 차관은 유엔과 튀르키예를 만날 것이라 말하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러시아가 소집한 안보리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흑해함대 공격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덴코 차관은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상황을 명확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면서 "모든 세부 사항이 명확해진 이후에 러시아가 소집한 안보리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 그 이후에 러시아는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흑해함대 함정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드론 잔해를 회수해 분석한 결과 캐나다제 내비게이션 모듈이 장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내비게이션에서 복구된 정보들을 통해 오데사 인근 해안에서 드론이 발사됐으며, 러시아 해군기지로 옥 전에 곡식을 실은 선박들이 항해하는 항로를 따라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혹은 서방이 곡식을 수출하기 위해 운영 중인 선박에서 드론을 발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해당 공격에 총 16대의 드론이 동원됐으며, 배후에는 영국 군사 전문가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러시아가 흑해 곡물수출 협정 중단을 선언한 이후 218척의 선박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는 크름반도 세바스토폴 흑해함대 함정이 드론 공격을 받았는데, 이를 우크라이나군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흑해 곡물수출 협정 중단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협정은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지난 7월22일 체결됐다. 120일 간 한시적으로 적용키로 한 당시 협정 조건에 따라 이해 당사국 간 연장에 합의하지 않으면 다음달 22일 만료된다.

서방은 이번 수출 협정 중단으로 곡물값이 다시 급등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흑해 항로가 막히면서 곡물값이 치솟으면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서방은 러시아가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오아나 룬제스쿠 나토 대변인은 "나토(NATO)가 유엔이 우크라이나와 맺은 곡물 수출 협정을 갱신할 것을 러시아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룬제스쿠 대변인은 "러시아가 협정 중단 결정을 재고하고 갱신해 식량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며 "푸틴 대통령은 식량 무기화를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협정을 중재했던 유엔과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접촉 중이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흑해 곡물수출 협정과 관련해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참여 중단 선언을 철회시킨다는 목표로 강도 높게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러시아와 접촉을 위해 알제리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 참석을 하루 연기했다.

튀르키예 국방부도 곡물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튀르키예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훌루시 아카르 국방장관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게 협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도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곡물을 실은 선박에 대한 검문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헤르손 진격 우크라이나,가을비 복병 만나 고전

우크라이나 전쟁 첫날 찍은 우크라이나의 한 건물, 러시아의 포격으로 뼈대만 남아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트위터
우크라이나 전쟁 첫날 찍은 우크라이나의 한 건물, 러시아의 포격으로 지금은 뼈대만 남아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트위터

가디언은 30일(현지시각) 러시아 국방부를 인용해 이날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헤르손, 루한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포격을 가했으나, 원전 가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7개 지역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민간인 5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일대를 탈환한 데 이어 남부 헤르손 전선을 향해 빠르게 진격하던 우크라이나군이 가을비라는 복병을 만나 발목 잡힐 위기를 맞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는 우크라이나군은 라스푸티차(Rasputitsa) 현상으로 남부 점령지인 헤르손 지역을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라스푸티차는 매년 봄·가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에 불편을 끼치는 현상을 말한다. 봄철에는 한겨울 동안 얼었던 땅이 녹고, 가을철에는 우기가 시작돼 폭우가 내리면서 비포장 도로나 평원이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하는 것이다.

물러진 흙 때문에 승용차들의 통행이 어려워진다. 특히 전쟁에서는 탱크나 군용차량 등이 빠져 막대한 손실을 보게될 위험이 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1941년 아돌프 히틀러의 러시아 공세가 모두 실패한 원인으로 라스푸티차가 꼽힌다. 당시 나폴레옹은 주력 부대인 포병대의 이동이 매우 느려져 진군속도가 제한되면서 식량 부족으로 패배하게 됐다. 또 나치 독일군은 탱크와 장갑차가 모두 진흙탕에 빠져 전투차량 대부분을 버리게 되면서 막대한 손실을 안고 모스크바 진격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도 지난 봄 라스푸티차 현상에 고전했다. 지난 4월 돈바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선언했던 러시아는 당시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거대한 진흙뻘판 때문에 진격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이 현상이 남부 점령지 헤르손 탈환을 앞둔 우크라이나군에게 복병으로 작용할 것으로 NYT는 전망했다. 가을을 맞아 쌀쌀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가 진흙탕에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라스푸티차는 공세를 펴는 쪽에 보다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헤르손 지역은 농경지 사이로 관개수로가 이리저리 나 있는 탁 트인 평원이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측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큰 비 때문에 군사장비의 이동에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다"며 "루한스크주 외의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가장 먼저 점령한 도시가 헤르손 이었으나 우크라이나 군이 재탈환을 선언한 이후 진격하면서 러시아군이 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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