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집회에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홍수형 기자

32년간 지속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의 군사 독재의 시작은 페미니스트 사냥에서 시작되었다. 페미니스트 단체 거르와니는 트럭을 타고 시골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글을 가르치고 역사를 이야기했으며 인권을 깨우쳤다. ‘생리휴가를 달라’, ‘성교육을 하라’. ‘성매수 남성만 처벌하라’. ‘육아시설을 확대해라’. ‘대통령은 말로만 여자를 존중한다고 하지 말라’. 거르와니는 1965년에 회원수가 300만에 이르렀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들은 더는 남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여성들에게 부엌으로 우물가로 침대로 돌아가라고 할 때 그들은 말했다. “여자들이 정치해야 한다.”

혐오 정치의 페미니스트 사냥

이들을 무너뜨린 것은 혐오 정치였다. 독립운동 영웅 장군들을 살해한 신군부는 거르와니가 이들이 죽였다고 발표했다. 성적으로 문란한 그들이 벌거벗고 장군들을 유혹해 죽여버렸다고. 십대 소녀들이 중년 남성들을 힘으로 제압해 죽였다는 말을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못마땅함, 불편함 그리고 혐오의 이유를 찾던 그들에게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파 자경단은 거르와니를 창녀, 살인자라 부르며 이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색출했다. 300만명이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살해되었지만, 여전히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수하르토 정권은 페미니스트 단체가 다시 시작될까 봐 주요 여성단체를 공무원부인과 군인 부인단체로 대체해 버렸고, 내무부가 나서서 여성단체를 관리했다. 이후 인도네시아의 여성 노동환경은 처참해졌고, 저항하던 노동운동가는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반정부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여성 지우기는 소수자 지우기

‘여성가족부 폐지’로 시끄럽다. 서울 종각에서 여성가족부폐지 반대 집회에 나갔다가 장애여성인권, 지역의 상황 등을 듣고 돌아오며 인도네시아 신군부 쿠데타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 혐오는 단지 여성의 인권만 낙후시키지 않는다. 단상에 올라가 발언을 했던 남은주 상임대표(대구 경북여성단체 연합)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 힘 출신 지자체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구체적으로 퇴행이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홍준표 대구 시장은 대구 여성가족재단을 다른 기관과 통폐합 하고 있으며 여성회관은 도시 관리 본부 관할로 넘겨 정책 집행 구조가 아니라 시설로 만들어 버렸다. 양성평등기금도 폐지했다. 홍준표의 막말은 그저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반 여성 정책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지자체들도 홍준표 시장의 통폐합 과정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지역단위도 예외는 아니다. 구로의 여성정책과는 가족보육과로, 강동의 여성정책과는 가족정책과로 이름을 바꾸며 여성을 지우고 있다.

여성을 지워서 더 넓은 인권의 목소리를 낼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여성을 지운다는 것은 여성을 대표로 하는 소수자를 지운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대구에서는 인권위원회를 폐지했고 하고 서울특별시에서는 인권위 임기가 3월에 만료되었는데 아직 위원회 구성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인권과는 감사위원회 밑으로 옮겨 조사의 독립성이 없어졌다. 충남에서는 학생인권 조례폐지안이 주민발의로 청구되었고, 인권증진팀과 남북교류팀 폐지를 위한 조례 일부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었다.

현정부는 “여성가족부폐지”라는 주문을 유령처럼 퍼트리며 하나 둘 인권의 목소리를 지우려 하고 있다. 집회의 마지막순서에 단상에 오른 김현미(연세대)교수는 윤석열 정부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탄압과 지우기가 진행되자 더 많은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유령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고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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