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스토킹 보고서] ⑥ 젠더폭력 전문가에게 듣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
“가해자 구속하고 적극적 분리
피해자 신변보호 강화 요구해도
경찰은 소극적 대응...법의 한계도
‘스토킹은 가벼운 범죄’ 인식 드러나
여성 노린 폭력 ‘사랑싸움·개인사’ 취급”

2021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스토킹 살인을 저질러 신상공개된 범죄자들. (왼쪽부터) 전주환, 이석준, 김병찬, 김태현. ⓒ뉴시스·여성신문
2021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스토킹 살인을 저질러 신상공개된 범죄자들. (왼쪽부터) 전주환, 이석준, 김병찬, 김태현. ⓒ뉴시스·여성신문

350회. 피해자를 스토킹한 끝에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살해한 전주환이 2019년부터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연락하고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을 한 횟수다. 2년간 고통받던 피해자는 2021년 10월 경찰에 전주환을 스토킹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전주환의 ‘위험성’을 가장 낮은 단계로 봤다. 폭행, 신체 제한 등 물리적 위협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막을 기회도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놓쳤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구속하면 돼요. 왜 안 하나? 스토킹을 가벼운 범죄로 보는 인식이 법과 법 집행기관에 남아 있는 거죠. 아무리 심각한 폭력이 벌어져도 가해자가 구속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스토킹을 비롯해 젠더폭력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스토킹 사건을 보면 가해자가 형사재판을 받기는커녕 경찰 수사 단계에서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신고 단계에서부터 속 터지는 일이 많아요. 피해자에게 스토킹 범죄의 법적 정의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해당 사항 없으면 스토킹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 경찰관도 있고요. 가해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검찰에 넘겨서 검사가 다시 수사하라며 돌려보내기도 해요.”

실제로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약 반년간 신고가 폭증했지만, 기본 수사를 마치고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고작 17%다. 80% 이상은 충분한 수사나 재판 없이 경찰 단계에서 종결됐다. (관련기사 ▶ [단독] 스토킹 신고해도 17%만 검찰로 넘어가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727)

피해자 보호도 부실하다.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원해도 경찰이 적극 나서는 경우가 드물어요. 경찰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잠정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도 해요. 가해자가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요. 오죽하면 한 피해자는 직접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신변보호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까지 했어요.”

스토킹 살인. 막을 기회도, 방법도 있었다. 다 놓쳤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스토킹을 가벼운 범죄로 보는 인식이 법과 법 집행기관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Shutterstock
스토킹 살인. 막을 기회도, 방법도 있었다. 다 놓쳤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스토킹을 가벼운 범죄로 보는 인식이 법과 법 집행기관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Shutterstock

스토킹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이 촉발한 젠더폭력 범죄다. 그러나 여성들이 겪는 폭력은 아직도 ‘사랑싸움’, ‘개인사’ 등으로 취급되곤 한다. “스토커가 전 남편이다, 특히 이혼 소송 중에 스토킹한다, 이런 경우는 신고해도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지 않아요. 가해자가 목을 조르고 칼을 휘둘러도 피해자보호명령, 상담명령에 그치죠.”

현실의 다양한 범죄를 다루지 못하는 스토킹처벌법도 문제다. 특히 사이버 스토킹의 경우 ‘스토킹’의 법적 정의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고조차 못 하고 괴로워하는 피해자가 많다. 

“현장에서는 처음부터 ‘지속성, 반복성, 도달’이라는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의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어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무언가를 보내지 않아도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감시할 수 있고, 피해자가 그걸 알 수 있거든요.”

“스토킹은 단순 스토킹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순식간에 폭행, 감금, 살인, 성폭력 등 강력범죄로 전이될 수 있다. 2013년~2020년까지 ‘스토킹’ 표현이 등장한 형사사건 1심 판결문 148건 중 절반가량이 강간, 상해, 폭행, 협박,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 성범죄나 다양한 신체적 폭력을 동반했다(한민경 경찰대 교수, 2021).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겐 쉽지 않다. “1년 이상의 오랜 기간 피해를 겪다가 법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분들이 많아요. 괜히 가해자의 심기만 건드려서 상황이 나빠지는 게 아닐까 우려하는 피해자가 많죠. 처벌이 미약하니까요. 신고해도 가해자들이 보란 듯이 가해를 반복하는 경향도 있고요.”

스토커들은 피해자의 가족, 지인 등 주변인을 노리기도 한다. 전 연인을 스토킹하던 이석준은 그 어머니를 살해하고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렸다. 김태현은 자신이 스토킹하던 여성을 포함한 세 모녀를 살해했다. 그러나 스토킹처벌법으로는 제지나 처벌이 어렵다. 피해자 본인만을 보호 당사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피해지원 단체들이 스토킹처벌법을 만들 때부터 법의 보호 대상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이어보기 ▶ 욕설·감시 한 번도 용납 안 돼...사소한 폭력이 스토킹 불씨 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084

스토킹 관련 신고와 상담 안내도. ⓒ여성신문
스토킹 관련 신고와 상담 안내도. ⓒ여성신문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의 스토킹 피해자 지원 안내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의 스토킹 피해자 지원 안내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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