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의 한 갯벌. 썰물 때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민의 놀이터이다. 우연히 놀러온 사람들이 쓰레기 버리는

모습을 한 30분간 관찰하게 되었다. 그 30분 후에 드러난 우리 '민

도'의 성적표를 읽어보자.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는 텐트를 치

거나 파라솔을 임대해야 한다. 파라솔은 1시간에 5천원. 알뜰파들은

사이사이에 텐트를 설치하고 돗자리를 편다. 임대 파라솔과 텐트 사

이에는 쓰레기 뭉치들이 모여져 있다. 잠시 후 30대 여성이 커다란

솥을 들고 쓰레기 더미 앞으로 다가온다.

"이걸 어디다 버리지?" 곱게 화장한 여성의 조심스런 목소리. "저

나무에 묻어." 옆에 누워 있던 50대 여인이 건네는 지혜의 충고. 30

대 여성이 조심스레 쓰레기 더미에서 세발자국쯤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키 50센티미터 정도의 키작은 나무 한그루가 뜬금없

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그 근처 모래밭에 앉아서 교양있는

태도로 모래를 파고는 커다란 솥을 거꾸로 치켜들고 음식 찌꺼기를

붓는다. 무슨 매운탕을 끓여먹은 모양인지, 걸쭉하고 시뻘건 국물이

무거운 몸을 모래속으로 떨어뜨린다. 다시 모래를 위에 엎은 여인이

조신하게 걸어서 텐트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나무 밑에 음식 찌거기를 버리라는 지혜를 들려주었던 50대

여성이 냄비와 물 한바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냄비를 부셔셔 시뻘건

물을 쓰레기 더미 위로 던지더니 이어서 남은 물을 모래밭에 붓는다.

그 물은 쓰레기 더미 쪽으로 흐른다. 그 쓰레기 더미에는 이미 라면

면발, 밥 등등 비닐에 들어 있지 않은 음식찌꺼기가 악취를 풍기고

있다. 고개를 조금 돌려보니 파라솔 임대를 해주는 장사들이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컵라면도 팔고 라면도 끓여팔고 술과 안주도 파는 이

집에는 하수도나 쓰레기통이라는 게 없다. 남는 국물은 그 근처에서

자라는 나무 근처 땅에다 버리고, 쓰레기는 비닐 봉투에 담아 던져놓

는다.

알고 보니 사람들은 쓰레기 한가운데서 밥 끓여먹고, 화투치고, 잠

자고, 사랑하고, 웃고, 아이들 가르치고 그러고 있었다. 여름 휴가를

쓰레기 더미 속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를 유심히 지

켜보고 나니 이 갯벌 모래사장이 왜 야릇한 쓰레기 냄새에 찌들어있

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곳의 나무들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각종

국물을 먹고 자라는 기이한 식물이었다. 모래사장처럼 보이는 바닥은

사실 쓰레기 매립용이었던 것이다. 근처의 유일한 재래식 화장실에서

는 악취가 나는데 바로 그 옆의 개울가에서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

었다.

파라솔을 임대해 수입을 올리는 장사꾼들은 낮잠과 카드놀이로 소

일하는 듯했다. 돈을 받는 만큼만이라도 파라솔 주변의 모래사장 청

소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들의 텐트 주변은 더 지저분하다.

경찰관 한명이 파견돼 있는데 그의 주요 업무는 주차위반 단속이었

다. 그나마 뒤범벅된 차량을 소통시키기에 그는 너무 어리고 미숙해

보였다. 이런 사정이 이 한곳만의 특이한 현상이라면 얼마나 다행일

까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민도임을 아프게 인정해야 하는게 현실이

다. 그러니 아무리 환경보호를 목아프게 외쳐도 우리나라의 자연은

한참 더 파괴되어야 할 것이다.

'아기 개구리가 연못에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놀러와 물을 더럽

히게 되자 아기개구리가 더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연못을 떠나 버렸다

'는 교훈적인 내용이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교과서에 등장한다.

선진국이 되고 고학력 사회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청결도나 환경의

식 면에서 우리는 이 초등학생 1학년 1학기 수준도 못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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