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산다]
노동자 안전보다 생산성·매출 앞세우는
기업 문화 바뀌어야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SPL 평택공장. 제빵공장 소스 배합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20대 여성 노동자를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SPL 평택공장. 제빵공장 소스 배합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20대 여성 노동자를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으로 매출과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임직원을 위해 커피 배달 로봇도 운용한다고 홍보할 정도로 세상이 발전했다는데, 정작 제조 현장에서는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소스 재료가 아닌 것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멈춰야 할 기계는 멈추지 않고 20대 여성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파쇄기 위에서 작업하던 학생이 사망했고, 추락사도, 압사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매년 건설업 노동자 400명 이상, 제조업 종사자 200명가량이 일하다 죽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산업재해로 325명이 사망했는데, 제조업종에서 일하다가 끼임 사고로 죽은 이가 29명이다. 이런 비극을 막는 기술은 정말 없는 걸까?

식료품 제조업(food industry) 현장의 산업안전(safety)에 대해 찾아봤다. 대부분 식품 안전성 이야기다. 노동자(workers)가 언급된 경우는 음식 제조 과정에서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지, 제품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지 등 내용이 대부분이고, 포장 작업 시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¹. 머신러닝이나 인공지능(AI), 로봇 기술 활용 사례도 산업안전보다는 식료품 안전에 초점을 맞춘다. 식재료의 수요와 공급을 정확히 예측해 질 좋은 음식을 만들고,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불량 발생 원인을 찾아내고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골자다.

일반 제조업에서도 AI를 활용한 산업안전 논의는 주로 로봇 자동화 연구로 이어진다. 위험한 일을 로봇이 대신 하고, 동시에 인간의 실수(human error)도 줄이려는 것이다. 제조 공정상 발생하는 인체 유해물질을 미리 찾아내거나, 작업자가 고글을 제대로 쓰도록 유도하는 센서 등이 주요 사례다.

한국 정부도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등 9개 부처가 모여 스마트공장 3만 개를 구축해 ‘중소기업 제조강국’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자리도 창출하고 산업재해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양적으로는 대부분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2월 공개된 보고서²에 따르면 정부 지원은 제조장비, 산업 같은 운영기술 분야보다 정보기술 분야 역량 강화에 쏠려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첨단기술을 생산과정에 실제 적용하는 비율이 낮다고 한다. 제조업 스마트 기술의 강점은 공정 프로세스 전반 시뮬레이션이니, 이 부문에 대한 역량 강화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설령 AI가 제조 운영 시뮬레이션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제조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을 막을 수 있다 할지라도 한계는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³에 따르면 제조업 사망 사고 대부분은 업무 막간을 이용한 수리나 정비, 청소같이 일상적이지 않은 작업 중에 발생했다. 식료품 제조 기계에 원료와 함께 떨어진 이물질을 제거하려다 끼일 수도 있고, 분쇄기 작동이 잘 안된다고 생각해 점검하다가 전원이 작동해 끼일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작업장 내 모든 시나리오를 커버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작업장 내 방호 조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2인 1조 근무가 원칙이어도 많은 작업장에서 두 명이 함께 일하지 못하는 현실 또한 보고서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노동자들의 안전보다 생산성과 매출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변치 않는다면, 제조업체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기술개발 영역도 인간 노동자의 존재를 놓칠 수 있다. 이대로라면 기술이 고도화돼도, 노동자의 수가 줄어도 노동자 1인당 업무량은 여전히 과도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터로 나선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지도, 더 오래 살지도 못하고 있다.

 

¹  Zhu et al. (2021) Deep learning and machine vision for food processing: A survey. Current Research in Food Science, Vol 4, p.233-249.

² 오윤환 (2022) 스마트제조 테스트베드 기반의 중소·중견기업 디지털 전환 지원 방안, STEPI Insight 288호, 2022-2-21.

³ 박재희 외 (2021)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1-2-17.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⑧ 이상행동 탐지·채팅앱 신고...AI로 스토킹 막으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68

⑨ 일하다 죽지 않게 만들 기술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998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