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국가 지도자들의 말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국가 지도자들의 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22.10.17 12:18
  • 수정 2022-10-18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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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ik, vectorjuice
유권자 앞에서 행하는 정치인의 유세에서 얼굴 표정, 손과 몸짓의 행위는 눈의 관심을 끄는데 그치지만, 말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하고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freepik, vectorjuice

정치는 말을 수단으로 해 이루어지는 행위다. 유권자 앞에서 행하는 정치인의 유세에서 얼굴 표정, 손과 몸짓의 행위는 눈의 관심을 끄는데 그치지만, 말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하고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무심코 내뱉는 욕설이나 비속어는 습관이나 감정적 폭발을 통제하지 못해 분출된 표현이겠지만 사용한 언어는 결국 그들의 인격과 내적 수준, 그리고 전력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는 창이 된다. 

정치인의 말이 정치적 비전과 실천적 의지를 담고 있을 때 국민에게는 희망과 꿈을 갖게 만든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집권 13년 동안 30번에 걸쳐 행한 라디오 연설은 대공항과 실업, 전쟁기간 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미국 국민들에게 풍파에 떠 있는 돛단배가 발견한 등대처럼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높은 물가, 실업율,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구제, 개혁, 재건을 통한 국가개조를 약속한 루즈벨트의 메시지는 삶의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바로 다음 날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고 자유와 정의의 승리를 위해 침략자를 응징할 것”이라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결의에 찬 메시지는 미국을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 만들고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영화 ‘킹스 스피치’ 한 장면.
영화 ‘킹스 스피치’ 한 장면.

국민 뭉치게 한 조지 6세의 연설
국민 대립하게 만든 트럼프의 말

영화 ‘킹스 스피치’에 등장한 조지 6세의 연설도 좋은 예다. 국왕이 되기 전 심한 말더듬증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였지만, 교정 교사의 도움으로 장애를 극복한 결과 국민의 가슴을 뛰게 하고 마음을 끓게 하는 연설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으로 불안에 떨던 영국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시멘트의 역할을 했다.

지도자의 말이 국민을 나누고 갈등을 일으키게도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레토릭으로 사용할 때 지지하는 백인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우월감을 가져다줬을지는 몰라도 반지지층을 적으로 간주해 국민을 둘로 나누고 대립하게 만들었다. 그의 말은 결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의사당을 공격하라고 선동해 의사당 무력점령이라는 미국 역사의 치욕을 남기기도 했다.

국가 지도자가 말로 스스로를 낮추고 잘못을 인정할 때 진정 존경받는 지도자로 받아들여진다. 옌스 스톨텐베리 현 북대서양 조약기구 총장이 노르웨이 총리로 재직할 때였다. 미래정치인의 꿈을 꾸며 여름정치캠프에 참가했던 20대 청년들 69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우테러범의 소행으로 좌절과 비탄에 빠진 국민들을 행해 던진 그의 연설은 용서와 포용의 대전환을 가져다 준 보기 드문 예다. 전국민 추모미사에서 스톨텐베리는 꽃 같은 20대 젊은이들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오롯이 총리에게 있고 사태 수습 후 책임을 지고 사임할 것이라는 그의 눈물 썩인 흐느낌은 온 국민을 오열하게 만들었고, 정부의 책임보다 극우테러범을 길러낸 사회 모두의 책임으로 인식하게 만든 최고의 명연설이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슬픔과 좌절의 극복과 사회적 정신인 포용을 일깨워줘 노르웨이 국민정신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분열·갈등 조장하는 지도자의 말
집단폭력·팬덤 정치의 도화선 되기도

말은 화합과 용서를 이끌어낼 때 가장 빛을 발한다. 그런데 스스로 낮아지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면 말의 유효기간은 짧다. 화합과 용서, 인간해방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링컨과 만델라의 말에 담긴 철학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 정의를 담는 말의 그릇은 따르는 사람들을 동류의 사람들로 만드는 요술방망이가 된다. 지도자들의 말과 실천은 국민들의 의식과 규범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기폭제다.

반대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말은 자신과 지지자들에게는 당장 눈앞의 이득을 가져다줄지 모르겠지만 국가지도자로서는 자격미달이다. 그런 지도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치는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은 동류의식을 느끼게 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모든 사회반목과 갈등은 갈라진 틈을 더 증폭시킬 때 폭발하는 공통점이 있다. 지도자들의 말은 집단폭력과 팬덤 정치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성냥이 된다.

작금 ‘외교참사’라 일컫는 논쟁과 국정감사의 저급함을 보면서 우리 지도자들의 말을 지배하는 정신과 철학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바꿔야할지, 단기적으로 이것이 안 된다면 미래 지도자들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깊이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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