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연합 등 195개 시민단체
15일 서울 종로서 여가부 폐지안 규탄 집회
시민 3000여 명 참여해 도심 행진
젠더폭력 피해자부터 남성 노동운동가까지
윤 정부 향해 분노·경고의 목소리 높여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대한민국 헌법 34조 3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여가부를 폐지하려는) 윤석열 정부는 반헌법적 행위를 하고 있다.” (김현미 한국여성학회장·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여가부를 폐지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무지, 무식한 정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고, 퇴진을 요구받을 겁니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대표)

때아닌 정부의 ‘여가부 폐지’ 발표에 분노한 사람들이 단상에 올랐다. 젠더폭력 피해자, 장애여성, 여성학자, 남성 노동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195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15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연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 현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 3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무대에 선 사람들은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를 꺼내 들고, 아예 공식화한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대통령실은 여가부 폐지안을 발표하며 ‘여가부가 젠더갈등을 부추긴다’고 밝혔다. 김현미 한국여성학회장·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젠더갈등이라는 잘못된 말 쓰지 말라.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젠더 불평등과 젠더폭력이고,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 “이 조직개편안은 기망(欺罔)이다. 실증적 데이터, 정책 목표가 아닌 일부 극우 남성의 대중추수주의(포퓰리즘)에 부합해 이뤄졌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물리치진 못할망정 국민 감정이나 여론으로 호도한다”고도 비판했다.

김현미 교수는 “여가부 부활을 넘어,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을 추구하는 ‘성평등추진부’를 만들자”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나 감사하고 싶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됐다. ‘땡큐 석열, 위 아 올 페미니스트!’”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여가부의 도움으로 가해자에 맞서고 일상 회복에 힘써온 젠더폭력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냈다. 대한항공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회사와 소송 중인 피해자 A씨는 “여가부의 성폭력 피해 지원체계, 지원사업 덕분에 대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고 버틸 수 있었다”며 “여가부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 만연한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직장 내 성폭력이 더 일어나지 않게 관리 감독하고,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직장 내 성폭력을 겪고 여가부 지원을 받았다는 변영건 씨도 “여가부를 향한 많은 비판은 타당하며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가부의 지원은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의 목숨을 살리고 있다”, “여가부의 정책 방향이 타 부서에 녹아들어야지 기능이 이관돼야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극단적인 소수 의견이 미디어를 거치면서 과대대표됐고, 정치가 이 혐오의 논리에 편승했다. 현명한 어른들이 혐오가 아닌 지속가능한 길을 선택해달라”고 했다.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는 “성매매는 성착취임을, 성매매피해자들을 보호하고 탈성매매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부처가 여가부다.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여가부 폐지안을 내놓는 정부는 우리와 같은 폭력 피해 여성들을 외면하겠다는 것”이라며 “여가부 폐지를 당장 철회하고 더 강력한 정책으로 젠더폭력을 깨부수는 데 힘을 보태라”고 밝혔다.

이주여성인 나랑토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부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활동가는 “지난 20년간 이주여성 수십 명이 한국인 남편의 손에 살해당했다. 여가부의 중재 덕에 이주여성 폭력 피해 상담소가 만들어졌다”며 “지금도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을 유지하거나 자녀를 출산·양육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주여성을 출생 도구로 여길 뿐 이주여성이 겪는 폭력 문제엔 관심 없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부처는 없고, 폭력피해 여성 사각지대가 증가할 뿐”이라고 말했다.

오진방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사무국장은 “조손 가족, 비혼 출산, 한부모 가족, 1인 가구 등 다양한 가족 유형을 고려한 성평등 가족 정책이 필요하다. 여가부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부처”라며 “여가부 존폐를 여성혐오와 선동 목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 여성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가족과 여성을 분리하지 않는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당사자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시민들을 공격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자신이 임신·출산 과정에서 겪은 차별을 이야기했다.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병원 의료진에게 아이를 지울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복지부에 여성장애인 지원 제도가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제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혈압과 체온을 스스로 측정해야 했다.” 그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 정부는 장애여성이 겪는 부당한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외쳤다.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여가부 폐지는 단순히 한 부처의 소멸이 아닌 우리 사회 인권 후퇴의 상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부산시는 부산여성가족개발원과 부산인재평생진흥원을 통폐합을 추진해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대구시의 경우, 대구여성가족재단은 대구행복진흥원, 여성회관은 ‘도시관리본부’로 통폐합됐고, 양성평등기금과 대구시 산하 인권위원회는 폐지됐다.

남은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이러한 사례를 들며 “여가부 폐지는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정부는 여가부 폐지 이후 여러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책을 축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회와 정치가 대답해야 한다. 특히 180여 석을 갖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민주당은 여가부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최고위원들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대표도 “여가부를 폐지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그저 한 부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 국가가 인구정책을 세우고 개인의 삶을 처벌·통제했던 때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모두가 강력히 규탄하고 저지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를 폐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무지, 무식한 정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고, 퇴진을 요구받을 것”이라며 “정부가 할 일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성평등을 적극적으로 체계적으로 시행해 나갈 책임부처와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국정운영을 책임질 자격 없다. 눈치만 보고 있는 민주당과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막아내고 더 강력한 성평등추진체계를 만들라.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이들과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여성 없는 국가 없고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 없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성평등과 인권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지금이라도 적극 동참하라. 여가부를 체계적·조직적 여성인권 정책 실행을 위해 독립적 ‘성평등부’로 강화하라.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이런 집회를 열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분노스럽다”며 “여가부와 타 부처의 업무가 충돌한다면 노동부를 성평등고용노동부로, 복지부를 성평등복지부, 행안부를 성평등행안부로 바꾸고, 전 부처에 여성정책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여가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또 “남성들은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걷거나 일터에서 혼자 일하는 게 무섭지 않다. 아내의 임신 소식에 고용을 걱정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여가부가 꼭 필요하다. 그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며 “젠더 갈등의 원인은 여가부가 아니라 여성인권을 외면하고 성평등을 후퇴시키는 윤석열 정부”라고도 말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여성인권과 성평등을 짓밟는 윤석열 대통령, 김현숙 여가부 장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탈을 쓴 사람들을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둘러쌌다. ‘젠더폭력 피해자 인권보장’ ‘성과 재생산권 보장’ ‘성평등 민주주의’ 등이 적힌 현수막으로 덮어버리곤, ‘성평등 부처 강화’ 손팻말을 높이 들어올렸다.

시민들은 종로 거리를 행진하면서 여가부 폐지 반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저희는 여가부 폐지 반대하는 시민들입니다, 성평등 부처로의 변화를 약속하라고 나왔습니다, 반갑습니다’라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고 추진하는 정부 부처인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지난 6일 발표했다. ‘여성노동’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고,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 기능은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한국의 여성인권 증진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지난 20여 년간 애써온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자 성평등 민주주의 관점에서 완벽한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4일 여가부 폐지보다는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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