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연합 등 195개 시민단체
15일 서울 종로서 대규모 여가부 폐지안 규탄 집회
“여가부 폐지, 한 부처의 문제 아냐...
소수자·약자 위한 정책 줄고
우리 사회 인권 후퇴할 것”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195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15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를 열었다.

성폭력 피해자, 장애여성, 남성 노동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무대에 섰다. 대통령 선거 때부터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며 여성의 인권을 정쟁 도구화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대한항공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회사와 소송 중인 피해자 A씨는 “여가부의 성폭력 피해 지원체계, 지원사업 덕분에 대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고 버틸 수 있었다”며 “여가부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 만연한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직장 내 성폭력이 더 일어나지 않게 관리 감독하고,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자신이 임신·출산 과정에서 겪은 차별을 말하며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 정부는 장애여성이 겪는 부당한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말했다.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병원 의료진에게 아이를 지울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복지부에 여성장애인 지원 제도가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제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혈압과 체온을 스스로 측정해야 했다.” 

서혜정(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는 “여가부가 하는 여성장애인 정책을 타 부처로 이관한다면 성인지·장애 관점의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코로나19 이후로 여성 장애인들은 일터에서 불이익을 겪거나 돌봄, 사회 안전망 부재로 폭력과 성차별을 겪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여가부가 존립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성인지 정책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여성시민단체들이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여가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여성시민단체들이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여가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여가부 폐지는 단순히 한 부처의 소멸이 아닌 우리 사회 인권 후퇴의 상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남은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여가부 폐지는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정부는 여가부 폐지 이후 여러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책을 축소할 것”이라며 지역 사례를 언급했다. 부산시는 부산여성가족개발원과 부산인재평생진흥원을 통폐합을 추진해 지역 시민단체가 반발했다. 대구시의 경우, 대구여성가족재단은 대구행복진흥원으로 통폐합됐고, 여성회관은 ‘도시관리본부’로 통폐합됐고, 양성평등기금은 폐지됐다. 대구시 산하 인권위원회도 폐지됐다.

남은주 대표는 “국회와 정치가 대답해야 한다. 특히 180여 석을 갖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민주당은 여가부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최고위원들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대표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그저 한 부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 국가가 인구정책을 세우고 개인의 삶을 처벌·통제했던 때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모두가 강력히 규탄하고 저지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를 폐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무지, 무식한 정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고, 퇴진을 요구받을 것”이라며 “정부가 할 일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성평등을 적극적으로 체계적으로 시행해 나갈 책임부처와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국정운영을 책임질 자격 없다. 눈치만 보고 있는 민주당과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다. 입장을 분명히 하라. 윤석열 정부의 조직개편안 막아내고 더 강력한 성평등추진체계를 만들라.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이들과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이런 집회를 열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분노스럽다”며 “여가부와 타 부처의 업무가 충돌한다면 노동부를 성평등고용노동부로, 복지부를 성평등복지부, 행안부를 성평등행안부로 바꾸고, 전 부처에 여성정책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여가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또 “남성들은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걷거나 일터에서 혼자 일하는 게 무섭지 않다. 아내의 임신 소식에 고용을 걱정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여가부가 꼭 필요하다. 그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며 “젠더 갈등의 원인은 여가부가 아니라 여성인권을 외면하고 성평등을 후퇴시키는 윤석열 정부”라고도 말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재미없는 싸움이다. 세상의 상식을 부정하는 주장에 맞서야 하는 어이없는 싸움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을 통해 성평등 사회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앞당겨야 하는지 고민은 더 깊어지고 행동하는 시민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고 추진하는 정부 부처인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지난 6일 발표했다. ‘여성노동’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고,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 기능은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한국의 여성인권 증진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지난 20여 년간 애써온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자 성평등 민주주의 관점에서 완벽한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4일 여가부 폐지보다는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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