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진흥원 공모전 수상작
고등학생의 윤석열 정부 풍자만화 두고
문체부 “엄중 경고”에 행정조치 예고까지

만화계 반발 “명백한 차별·사상검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현 우려”
여당서도 “긁어 부스럼”

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 ‘윤석열차’. 올해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 ‘윤석열차’. 올해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고등학생의 윤석열 정부 풍자만화가 때아닌 ‘표현의 자유’ 논란에 휩싸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만화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한다”며 행정조치를 예고해서다. 만화계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떠오른다”며 반발했다. ‘자유’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의 행보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의 중심에 선 풍자만화 ‘윤석열차’에는 윤 대통령의 얼굴이 달린 열차가 등장한다. 김건희 여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조종석에 있고, 그 뒤로는 칼을 든 검사들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사람들은 열차를 피해 놀란 얼굴로 달아난다. 올해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이다. 9월 30일부터 지난 3일까지 열린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작품 사진이 퍼지면서 주목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일 고등학생의 윤석열 대통령 풍자 만화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문체부 보도자료 캡처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일 고등학생의 윤석열 대통령 풍자 만화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문체부 보도자료 캡처

문제는 문체부의 대응이다. 문체부는 4일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고 “공모전에서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문체부 후원 공모전’ 표기도 문제 삼았다. “애초 ‘정치적 의도’를 공모전 결격사유로 명시했는데 만화영상진흥원이 위반했다. 후원명칭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며 “엄격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문체부의 대응이 과하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 등 지적이 쏟아졌다. 만화계는 문체부에 만화영상진흥원을 향한 경고와 행정조치 예고 취소, 문체부 장관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만화연대, 웹툰협회, 한국카툰협회, 한국웹툰산업협회, 한국출판만화가협회, 한국만화웹툰학회, 지역만화웹툰단체 대표자 모임 등 7개 만화계 협단체는 지난 7일 공동성명을 내고 ▲만화, 웹툰 창작자에 대한 사상검열과 차별 중단·표현의 자유 보장 ▲개인정보가 공개된 원작자 학생에게 공식 사과 ▲만화영상진흥원에 가해진 부당한 압력 중단 ▲문체부 장관의 사과·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만화의 기본 속성은 ‘풍자와 재미’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며 “특히 권좌에 오른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기본적인 표현의 영역에 속한다”고 했다.

문체부가 진흥원에 후원명칭 승인 취소 예고를 한 데 대해서는 “명백한 차별이며 사상 검열로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체부와 몇몇 언론이 공모전에서 입상한 학생의 실명과 학교명 공개를 철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작가들에게 올가미로 씌워졌던 ‘블랙리스트’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화, 웹툰 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계와 함께 힘을 모아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를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평소 행보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웹툰협회는 4일 밤 SNS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지난 12월8일 서울 대학로에서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코미디는 현실에 대한 풍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그야말로 말초적으로 웃기기만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치와 사회에 힘 있는 기득권자들에 대한 풍자가 많이 들어가야만 인기 있고 국민 박수를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며 “문체부는 행정부 수반의 평소 소신과 철학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반기를 드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체부가 두 차례나 협박성 보도자료를 내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밀실에서 이뤄졌지만 지금은 아예 공개적으로 예술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이날 “윤석열 정부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작품이 아닌 정치색을 빼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여당에서도 “긁어 부스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준석 전 대표도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문사마다 일간 만화를 내는 곳이 있고 90% 이상이 정치 풍자인 것은, 그만큼 만화와 정치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만화진흥원 관계자는 여성신문에 “문체부에서 어떠한 조처가 내려오면 검토해 대응하겠다. 수상 취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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