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으로 전쟁 사슬 끊자”

50여 여성단체 파병반대 촛불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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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비통한 심정이다. 납치 소식을 접하자마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사귀환을 빌었다면 그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마음의 빚을 졌다.”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23일 김선일씨의 죽음 소식을 접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사진·민원기 기자>

이라크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고 김선일씨의 죽음에 분노한 여성계가 이라크 파병 반대, 반전평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50여 개의 여성단체로 구성된 반전평화여성행동(여성행동)은 24일 '고 김선일씨 추모 및 파병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선일씨의 죽음을 초래한 노무현 정부의 반인륜적 태도와 파병 강행 결정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파병결정 철회와 김선일씨 피납 사실의 은폐 의혹 해명을 촉구했다.

이날 최선희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사무처장은 “평화만이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서 “생명을 보듬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전쟁의 사슬을 끊자”고 호소했다.

윤금순 통일연대 여성위원장은 “이 땅의 선량한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모는 미국에 대해 단호히 싸우겠다”며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않는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박인순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약자”라면서 “김선일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파병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로 한국 외교부의 비자주적 현실을 절감한다”면서 “전쟁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도 파병이 철회될 때까지 반대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최문성미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직국장은 최근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테러범들을 응징하자고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 “보복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더 많은 희생자를 양산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한편, 김선일씨의 부모와 유가족들은 “정부가 납치 사실을 알고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것 아니냐”며 정부 정책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또 “아들이 살해위험에 처했는데도 정부가 추가파병 방침을 밝혀 죽게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선일씨가 죽기 전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이 언론에 공개되고, 그의 납치일이 5월 31일이었다는 보도가 발표되면서 정부가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데 대한 안타까움이 확산되고 있다. 23일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린 추모 촛불행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광화문 촛불 행사장에서 만난 이선영(35)씨는 “김씨의 이메일을 읽고 울었다. 그는 미군의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다”며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는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김씨는 부시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강한 남성중심 패권주의에 의한 희생양”이라며 “제2, 제3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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