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첫 조직개편안 논란]
철학도 비전도 없는 ‘여가부 폐지’
부처 흡수되는데 성평등 강화 주장
성평등 정책 총괄 기능 약화 우려

정부·대통령실은 여가부 폐지가 성평등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여성계에서는 궤변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신문
정부·대통령실은 여가부 폐지가 성평등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여성계에서는 궤변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신문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 조직개편안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대통령실은 “여가부 폐지가 성평등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여성계는 성평등 정책 전담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성평등 강화는 궤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6일 여가부를 폐지하고 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가부의 주요 기능을 복지부와 고용부에 흡수시키고, 타 부처 산하 본부 체제로 격하시킨다는 내용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남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정부 조직개편안에 그대로 담겼다. 새 정부 출범 150일 만에 내놓은 첫 조직개편안은 여가부 폐지에만 방점을 뒀지, 국정 철학이나 앞으로 5년간의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여가부 폐지는 여성,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고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오히려 성평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이 부처 폐지로 성평등이 강화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장관이 언론 설명에서 밝힌 여가부 폐지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총 3가지다. 첫째, ‘여성 특화’ 여성 정책으로 국민 공감도가 낮았던 것을 극복하고 남녀, 세대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 정책으로 정책 체감도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여가부가 초미니부처로 실질적 집행 기능이 미약했던 것을 극복하고 출산, 양육, 여성빈곤, 여성노인, 여성 장애인 등 양성평등 정책의 집행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지금까지 상담소와 보호시설 중심의 피해자 지원 정책이 이뤄졌다면 보건의료, 사회복지체계와 연계해 피해자 의료 및 자립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윤석열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여성가족부폐지저지를위한공동행동이 '여성가족부 폐지 여가부 폐지 한다고 지지율 안올라간다 윤석열 정부 여가부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윤석열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여성가족부폐지저지를위한공동행동이 '여성가족부 폐지 여가부 폐지 한다고 지지율 안올라간다 윤석열 정부 여가부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부처 흡수로 성평등 정책 총괄 기능 잃을 것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여성계는 다른 부처로 흡수되는 것이 기능 강화를 의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성평등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기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15개 여성단체는 정부 발표 직후 “의안 제출이나 심의, 의결권도 행사할 수 없는 국무회의 배석권한을 가진 본부장이 어떻게 성평등 정책 총괄 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김 장관이 발표한 여가부 폐지에 따른 효과에 대해서 반박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여가부가 해왔던 일들이 대부분이 모든 성별을 위했던 일이었다”고 주장을 일축했다. 신 교수는 “여가부 정책이 겉으로는 한 성별을 정책 대상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성별 격차를 해소해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성별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주요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을 두고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만 고용노동부로 보냈고, 사실상 나머지는 복지부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복지부라는 하나의 부서에만 들어가기 때문에 양성평등 정책의 영역이 확대된다는 것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인구가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의 도구로 삼는다고 비판한다. 566개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연대도 “젠더에 기반한 여성폭력 문제는 ‘복지’의 문제도 ‘인구가족’ 문제도 아니다”라며 “성평등 정책 추진을 인구가족과 노골적으로 엮은 것은 여성을 다시 인구‘생산’의 도구로 삼고, 가족의 영역에 묶어두고야 말겠다는 저의를 천명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논의의 과정이 없었던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불꽃페미액션의 류다현 활동가는 11일 기자회견에서 “전문가 간담회 회의로도, 참석자 명단도, 복지부와 행정부 사이의 부처 간 협의 과정을 남긴 기록도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며 “6월 전략 추진단이 설치됐지만 어떤 참석자들이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 어떤 자료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한편, 여성시민단체는 오는 15일 오후 2시 서울 종각역 2번출구 앞에서 대규모 여가부 폐지 반대 시위 개최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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