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산신각의 여산신. 사진=옥복연 소장 제공
하동 쌍계사 산신각의 여산신. 사진=옥복연 소장 제공

한반도 곳곳에서 살아 숨쉬던 수많은 여신들은 불교가 전래된 후에 어디로 갔을까? 불교는 무신론인데 여신을 배척하거나 억압하지는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불교가 등장할 당시 인도의 강력한 여신들은 불교가 흡수해 그 역할이 더욱 강력해지거나 변형되기도 하였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올 때도 이와 유사한데, 당시 토속 신앙이던 산신, 칠성신, 독성신, 목신, 용왕신, 물신 등은 불교에 자연스럽게 습합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이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들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붓다의 평등과 해방 사상 때문이었다.

오래된 이 땅의 토속신앙 가운데 ‘산신 숭배’가 있는데, 산 자체가 풍요와 생육을 위한 신비 한 대상이었으니 산신은 매우 강력한 신으로 신앙시 되었다. 산신 중에 특히 여산신은 신모신앙(神母信仰) 혹은 산모신앙(山母信仰)의 표식으로,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은 불교가 유입되면서 사찰 담장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지리산은 특히 ‘성모천왕’의 기세가 강한 곳으로, 지리산 대원사 산왕각, 지리산 법계사 산신각, 하동 쌍계사 삼신각 등에는 위엄을 갖춘 강력한 여산신이 두 다리를 땅에 굳건히 딛고 앉아 계신다.

한국불교에 여신은 “미륵할미”에서도 볼 수 있다. 미륵보살은 지금 도솔천에 있지만, 약 56억7000만년이 되면 인간세계로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고 전해오는데, 이 미륵이 할매로 재현되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할미손은 약손“이라며 아픈 배를 문질러주던 할머니는 지혜와 연륜으로 생명을 지키고 수호하는 이 땅의 여신이었고 또 미륵이었던 것이다. 김제 금산사 미륵할매, 거제도 죽림마을에 미륵할매는 아직도 건재하시다. 

거제 죽림 미륵할매상. 사진=옥복연 소장 제공
거제 죽림 미륵할매상. 사진=옥복연 소장 제공

뿐만 아니다. 하늘 세계를 날아다니며 붓다를 경배하고 장엄하는 천인 “비천”도 단청이나 기와, 법당 벽 등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선덕대왕신종은 온 세상에 그 종소리가 두루 퍼져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 하는듯한 두 쌍의 비천이 새겨져 있다.

한국불교에서 여신신앙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관세음보살일 것이다. 인도에서 남성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수행자의 깨달음을 돕고 국가를 호위하는 여신으로 <삼국유사>에서 등장한다. 물론 오늘날 사찰의 벽화에서도 관세음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고통에 빠진 중생이 한번만 불러도 달려와서 도와준다는 관세음보살은 오늘날까지도 수호여신으로 불자들에게 많은 사랑받고 있다.

불교에서 여신의 정점에는 경주 감실의 “할매부처”를 들 수 있다. 커다란 바위에 조각되어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이라는 정식 이름도 있지만, 동네사람들은 오랫전부터 ‘할매부처'라 부른다. 권위적이고 경배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손주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주시던 우리들의 할매, 바로 그 모습이다. 할매가 곧 부처라는 것은 “처처에 부처가 아니 계신 곳이 없고, 하는 일마다 불공 아닌 것이 없다”는 절집의 말과도 연결이 된다.

기후위기, 전쟁, 기아 등 생존을 위협받는 현실에서, 이제 생명을 만들고 보호하며 번성시키는 불교 여신들을 우리들 삶속에 소환하자. 그리고 내 안의 여성성, 내 안의 여신을 만나자. 

*[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칼럼은 전라남도 양성평등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가배울 살림인문학 아카데미  강연의 요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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