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 ‘윤석열차’. 올해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온라인 화면 캡처
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 ‘윤석열차’. 올해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온라인 화면 캡처

2015년 파리에서는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게재한 <샤를리 에브도>를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다. 참사가 발생하자 수십만의 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내가 샤를리다”를 외치며 테러를 규탄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했다. 처음에는 혐오 만평을 우려했던 마크롱 대통령도 결국 “프랑스에는 신성 모독의 자유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샤를리 에브도>의 거듭되는 모욕 풍자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아우렐리안 몽동 교수는 “최근 프랑스에서는 유독 소외 계층인 이슬람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풍자가 잦은데, 이런 혐오·모욕 발언을 프랑스의 정체성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풍자와 표현의 자유에 경계선이 존재하는가는 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2017년에는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전시회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나체로 그리며 풍자한 그림이 걸려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일도 있었다.

최근 고교생이 그린 풍자 만화 '윤석열차'가 정치적 논란거리로 비화했다. 이 만화에는 기차의 얼굴에 윤석열 대통령, 조종석에는 김건희 여사를 그려 넣었다. 뒤 칸에는 검사들이 손에 칼을 쥐고 탑승해 있다. 그리고 질주하는 기차 앞에는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몸을 피하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가 운전하고 살의를 가진 검사들이 함께 탄 정권이 시민들을 공포로 몰며 질주하는 광경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자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하고 ‘조치’를 거론하며 나섰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문체부의 조치가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웹툰협회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사회적으로도 이 만화와 문체부의 조치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는 모습이다.

일단 문체부가 나서서 ‘경고’와 ‘조치’의 얘기를 꺼낸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고교생의 만화라고 해서 정치적인 주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물론 문제의 만화와 그에 상을 준 일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공론의 장에 맡길 일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표현의 금지선을 긋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낳기 마련이다. 문체부의 대응은 너무도 구시대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 얘기가, 논란이 된 작품의 수상 사실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고교생이 정치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만화가 증오와 혐오를 담은 내용의 것이었다는데 있다. 정치적 견해나 편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악마처럼 표현하는 것은 증오와 저주로 점철된 우리 정치의 악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진영논리에 갇힌 일부 장년층 만화가들의 과도한 혐오 표현에 눈살을 찌푸리며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가 그런 혐오적 표현들이 정치적 풍자의 본령인 것으로 착각할까 무섭다. 고교생이라고 정치 만화를 그려서는 안 된다고 차별받아서도 안 되지만, 혐오 표현의 그림이 고교생이라는 이유로 칭찬받고 상 받을 일도 아니다.

그 고교생은 다른 만평들을 모방하여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혐오 표현을 따라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우리는 이 꼴이 되었어도 너희는 닮지 말라고 하지는 못할 망정, 증오의 심성을 따라하는 청소년들에게 상까지 주며 격려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끝없는 증오와 저주의 정치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대를 이어가며 권장할 일은 아니다.

정리하자. 고교생도 정치풍자 만화를 그릴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경고장을 날리는 광경은 구시대적이다. 하지만 증오와 혐오가 담긴 만화에 상까지 준 것은 잘못이다. 대개 진실은 각자가 보고 싶은 것 너머 어디쯤엔가 있곤 하다. 이 논란의 경우도 그러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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