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스토킹 보고서 ②]
수사·사법 절차에서 스토킹 피해자가 겪는 일들
거듭 신고·고소해도 벌금형만 나와
가해자는 활보하는데 피해자는 퇴사·은둔
검찰 재수사서 겨우 구속돼

ⓒ이세아 기자
ⓒ이세아 기자

이호영(가명·30대) 씨는 2019년부터 전 직장 상사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인사팀장이었던 가해자는 자신의 업무상 권한을 악용해 호영 씨의 개인 연락처와 주소를 알아내 괴롭혔다. 거절해도 계속해서 원치 않는 기프티콘, 상품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집 앞까지 찾아온 스토커를 친구 도움으로 붙잡아 112에 신고한 날이었다.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의 항변을 듣더니 말했다. “선생님, 애정표현이 과하시네요. 아가씨도 진정하고 대화를 해보세요.”

여러 번 신고하고 고소도 해봤지만 약식명령 벌금형 100만원 1회, 형사재판 결과 벌금형 500만원에 그쳤다. “재범 가능성이 높지만 초범이며 반성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가해자는 이후에도 호영씨에게 “단둘이 얘기 좀 하자”며 80회 넘게 문자를 보냈다.

몇 달 후인 2021년 11월, 호영씨는 가해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손목과 어깨 등을 다쳐 전치 5주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가해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나 구속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한다”는 게 이유였다.

2022년 1~2월, 가해자는 호영씨에게 “전화 안 받으면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른다” 등 위협적인 문자를 73통 보내고, 집 앞에도 여러 번 찾아갔다. 호영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스마트워치도 받았다. 하지만 가해자는 자유로이 활보하는데, 호영씨는 회사를 관두고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가해자는 검찰 재수사 끝에 지난 8월 구속됐다. 스토킹이 시작된 지 약 3년 만이었다. 가해자는 변호사를 통해 보상금 수천만원을 제시하며 끈질기게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상 유죄가 적용돼도 범행에 비해 가벼운 형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질적 보상을 따져라’는 조언도 들었어요. 가해자와 싸우느라 제 인생의 귀한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두렵고, 그냥 빨리 끝내고 싶기도 해요. 그래도 합의는 안 하려고요. 저처럼 가해자와 싸우느라 지친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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