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인 1990년, 서른에 막 접어든 나는 잘 나가던 아나운서 생활을 아무 미련 없이 접고 다들 말리는 노인복지 현장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노인복지를 향한 열정만이 차고 넘치던 그때 몸담은 곳은 '중부노인종합복지관'(현재 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전신)이었다. 그곳에서 정균식 아버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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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복지관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대부분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직원들의 나이로 볼 때 적절하지 않고, 어르신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싫어하시는 경우가 많다. 함께 모여 계신 자리에서 전체적으로 부를 때에는 '어르신'이라고 많이 하고, 공부 시간에는 가끔 '남학생, 여학생'으로 칭하기도 한다.

정균식 아버님은 올해 여든일곱이시다. 내가 아버님을 각별하게 여기게 된 것은 우선 아버님이 언제 어느 자리에서건 당신의 최고 학력을 내세우는 법도 없고, 자기 사업을 해오신 경력을 앞세우지도 않으신다는 점이었다.

또 아버님은 무학(無學)의 어머님들과도 격의 없이 노래 교실이나 포크댄스 교실에서 친하게 지내시면서, 결코 예의를 벗어나는 행동이나 말씀을 하시는 법이 없었다. 당신이 원하는 취미 여가 활동을 성실하게 즐기시면서, 한편으로는 그 당시 처음 시작한 '치매 상담 전화' 상담원 교육을 받으시고 상담원 봉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셨다.

그 후 내가 출산과 대학원 진학으로 복지관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1996년 송파노인종합복지관 개관 작업에 참여하면서, 아버님께 영어 기초반인 'ABC반' 강사를 부탁드렸다. 아버님은 왕복 세 시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내 청을 기꺼이 들어주셨고, 노인 학생들에게 잘 맞는 교수법으로 훌륭하게 자원봉사 강사 역할을 해주셨다.

이제 나는 프리랜서 사회복지사의 길을 가고 있고, 아버님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원봉사 활동에서 은퇴를 하셨다. 요즘은 부인께서 편찮으셔서 그 간병에 많은 시간을 쓰고 계시는데, 짬을 내어 근처 노인복지관 생활영어 교실의 강사 아닌 수강생으로 등록해 공부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아버님과 내가 얼굴을 마주보는 것은 일년에 한두 번 정도로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죄송하게도 늘 아버님께서 먼저 전화를 주셔서 약속을 하곤 하는데, 14년 동안 아버님과 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버님의 내리 사랑 덕이다. 육친의 사랑과 보살핌 못지않은 아버님의 깊은 속정에 나는 늘 감격하고, 그래서 감히 '친구'라고 자랑을 하는 것이다.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 마음으로 버리지 않는 것이 친구니까 말이다.

아버님과 만날 때 한 번은 아버님 댁 근처로 내가 가고, 그 다음은 아버님께서 우리 집 근처로 와주신다. 바로 지난주에 우리 집 근처로 와주셨는데, 사모님 병구완으로 많이 수척해지긴 하셨지만 그래도 여전해 보이셔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이 나빠져서 책을 많이 못 보신다기에 (우정)이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선물로 드렸는데, 주름 가득한 어르신들이 얼굴을 마주 대고 웃는 사진을 들춰보시면서 “나이 들어, 그것도 남자들간에 이렇게 정을 나누기는 참 어렵지…” 하며 혼잣말을 하셨다.

얼마 전 아버님은 결혼 62주년 기념일을 보내셨단다. 병원에 계신 사모님이 하루 빨리 회복하셔서 두 분이 62년 된 우정을 앞으로도 오래 오래 나누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든 일곱 내 친구인 아버님이 내게도 더 많은 시간을 내주셨으면 좋겠다. 다음 번에는 꼭 내가 먼저 전화해야지, 이 철딱서니 없는 여자 친구는 다시 한번 굳게 결심한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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