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스토킹 보고서 ①]
반복되는 스토킹 살인, 우연이 아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후 1년 반 동안
강력범죄 동반 스토킹 판결문 28건 분석

75% 연인 등 친밀한 관계서 발생
79% 실형 43% 집행유예
평균형량 고작 1년 10월
43% 피해자와 합의

스토킹처벌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여성이 스토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비극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빠르고 적절한 스토킹 대응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후 1년 반 동안 판결이 선고된, 살인·강간·강도·폭행 등 강력범죄를 동반한 스토킹 사건 형사판결문 28건을 공개한다. ⓒ이세아 기자
스토킹처벌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여성이 스토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비극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빠르고 적절한 스토킹 대응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후 1년 반 동안 판결이 선고된, 살인·강간·강도·폭행 등 강력범죄를 동반한 스토킹 사건 형사판결문 28건을 공개한다. ⓒ이세아 기자

남자는 살인을 결심했다. 2021년 11월 9일 밤, 집에 있던 식칼을 들고 택시를 탔다. 연락을 계속 피하는 옛 여자친구를 살해할 계획이었다. 경기도 부천 시내를 뒤져 피해자를 찾아냈다. 막아서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 저항하는 피해자를 찌르고, 거리로 끌고 가 또 찌르다가 체포됐다.

칼을 들고 여자를 찾아간 스토커가 또 있다. 남자는 헤어지자는 여자에게 2018년부터 2년간 폭행, 특수협박 등을 저질렀다. 2020년 6월엔 이별하자더니 돌연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했다.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이 초기에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지만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한 피해자의 말을 빌려 “상황만 더 악화”됐다.

“과거에도 가해자로부터 폭행 등 피해를 당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가해자가 이를 이유로 계속 피해자를 협박하는 등 상황만 더 악화됨에 따라 더 이상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로 피고인과 안전하게 이별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대전지방법원 2021고합OOO, 피해자의 법정 진술 중)

9월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전주환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있다. ⓒ홍수형 기자
9월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전주환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있다. ⓒ홍수형 기자

스토킹처벌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여성이 스토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비극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빠르고 적절한 스토킹 대응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책임은 부실한 법과 제도에도, 있는 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찰과 법원에도 있다.

여성신문은 스토킹이 일상을 파괴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했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후 1년 반 동안 판결이 선고된, 스토킹 행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됐고 스토킹이 살인·강간·폭행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거나 그러한 행위가 동반된 사건 형사판결문 28건을 분석했다.

강력범죄를 동반한 스토킹은 대부분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졌다. 여성신문 분석 결과, 관련 사건의 75%(21건)가 연인, 전 배우자, 성관계 상대 등을 노린 범죄였다. 헤어진 연인을 노린 범죄만 60.71%에 달했다(총 17건).

최신 연구 결과와도 비슷하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친밀한 파트너 살인의 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 살해사건 중 헤어진 연인을 스토킹 끝에 살해한 범죄가 37.5%(126건)였다. 전 연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1/3가량이 스토킹 당하다 살해당했다는 얘기다.

강력범죄 동반 스토킹이 꼭 아는 사이에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분석한 사건의 10.71%(5건)는 낯선 사람이 저지른 범죄였다. 가게 손님, 온라인 개인방송 시청자 등 피해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람이 가해자로 돌변했다. 다방 사장을 스토킹하는 과정에서 살인미수죄를 범한 남성, 약국 대표약사를 스토킹하다 성추행한 남성도 있었다. 여성 BJ의 집에 침입해 불법촬영, 감금, 폭행 등을 저지른 남성팬, 승객을 스토킹하다 폭행까지 한 택시 운전사도 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지 약 한 달 된 남성이 스토킹을 저지르고 주거침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78.57%(22건)는 실형이 선고됐다. 형량은 낮았다. 절반가량(42.85%, 12건)이 집행유예에 그쳤다. 집행유예는 빼고 징역형이 확정된 건만 봐도 평균 형량은 약 1년 10개월에 불과했다. 17.85%(5건)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평균 벌금액은 346만원, 그러나 5건 중 3건은 벌금 10만원에 그쳤다.

46.42%(13건)은 스토킹처벌법 위반죄가 인정됐다. 나머지 사건도 판결문에 스토킹 행위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으나, 스토킹처벌법이나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검찰이 가해자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나 피해자와 합의하고 피해자에게 선처를 구해 공소 기각된 사건도 있다.

42.85%(12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했다. 아무리 중범죄를 저질러도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형을 덜어줬다. 스토킹처벌법에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기관이 기소할 수 없다. 가해자들이 끈질기게 합의를 요구하며 2차 가해를 저지르는 배경이다. 스토킹 살인마 전주환도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하다 살인을 저질렀다.

뒤늦게나마 법무부가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 9월 전주환 사건 직후 정부 입법을 통해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이 명시되지 않은 판결문이 많아 정확한 분석은 어렵지만, 강력범죄를 동반한 스토킹 피해는 20대~60대 이상까지 여성의 생애주기 전체에 걸쳐 발생했다. 기존 국내외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 39.28%(11건), 경상도 21.42%(6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많았다.

여성신문이 분석한 강력범죄 동반 스토킹 사건 가해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53.57%(15건)는 전과자였다. 범죄 경력이 있는 남성이 또다른 폭력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도 부합한다. 전과 내용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준강간), 폭력범죄, 사기죄, 절도죄 등 다양했다. 폭력 관련 범죄 경력이 있는 가해자가 많았다. 살인·상해치사 등 폭력 범죄로 10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가해자도 있었다.

이 중 약 33%(5건)가 누범 기간에 범죄를 저질렀다. 누범이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형 집행 종료 이후 3년 이내에 또다시 금고 이상 형의 죄를 저지른 것으로, 법정형의 최고 2배까지 무겁게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분석 대상 사건 중 누범이 인정된 경우는 징역 2년~5년 선고에 그쳤다.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 등으로 형량이 줄어든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가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범행하거나,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잠정조치 등을 위반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한 경우가 32.14%(9건)였다. 판결문에 이러한 내용이 명시된 경우만 따졌는데,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형이 과하다면서 항소하는 가해자들도 있다. 항소·상고 결과 감형받은 경우는 14.28%(4건)이었다.

ⓒ이세아 기자

스토킹은 초기부터 적극 대응해야 하는 범죄다. 그러나 수사·사법기관의 대응에는 구멍이 너무나 많았다. 28개 사건 판결문을 모두 공개한다. 

https://notlove.notion.site/6f372011b9364f7f82f2cf3424c0ea6d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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