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세종대왕상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에 군경이 수색을 벌이는 소동이 벌어졌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대왕상 ⓒ뉴시스·여성신문

한글날을 즈음해 관련된 행사가 봇물을 이루었습니다. 일주일여 앞두고는 미처 다 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사가 열렸지요. 그 사이 저는 평소처럼 방송과 뉴스에서 전해지는 우리 말글을 살펴보았는데요, 넘치는 한글날 행사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우리 말글이 소외되거나 잘못 쓰이는 예가 많았습니다.

머그샷? 머그에 담은 음료를 마시라는 건가?

지난 한 주 ‘머그샷’에 대한 기사가 한동안 언론에서 다뤄졌습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며 ‘지금 얼굴과 너무 다르지 않으냐’는 우려와 함께 등장한 말이지요. 흉악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취지는 재범을 막고 범죄에 경각심을 높이자는 건데, 범죄자의 얼굴 사진이 너무 오래된 데다 포토샵으로 꾸며 현재 모습과 딴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범죄자의 ‘머그샷’을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는데요, 뉴스를 읽어보기 전까지는 머그샷을 술을 단번에 마시는 ‘원샷’처럼 머그에 음료를 넣어 마시라는 건지 알쏭달쏭하기만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머그샷’은 범죄자의 사진입니다. 구속된 피의자를 구금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찍는 사진을 말하는데요, 18세기 ‘얼굴’의 은어로 머그(mug)가 쓰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범죄자가 이름표와 수인번호가 적힌 판을 들고 정면과 측면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찍은 사진이 머그샷입니다. 국립국어원은 2019년 ‘머그샷 제도’를 ‘피의자 사진 공개제도’로 다듬은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머그샷은 ‘피의자 사진’으로 쓸 수 있겠지요.

플로깅과 옐로카펫

플로깅도 지난주 언론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대기업과 지자체는 물론 대학 등에서 가을을 맞아 플로깅 행사를 열어 기사화가 되었지요. 이 낯선 단어는 조깅(Jogging)과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 이삭을 줍는다)의 합성어입니다. 달리기를 하며 쓰레기를 줍는 친환경 활동인데요, 스웨덴에서 시작되어 최근엔 국내에서도 유행처럼 열리고 있지요. 기왕 하는 행사를 좀 더 의미 있게 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되고 있는데요, 국립국어원은 2019년 플로깅을 ‘쓰담 달리기’라는 우리말로 다듬었습니다. 그러면서 쓰담은 ‘손으로 살살 쓰다듬는 행위’이면서 ‘쓰레기 담기’의 줄임말이라고 소개했더군요. 사실 쓰담에 대한 설명은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쓰담이라는 말 자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데다 쓰레기 담기를 줄인 말이라니,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더군요. 하지만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피하고 우리말을 끈질기게 찾은 결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외국어를 대체한 우리말이 모두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좋은 취지로 열리는 행사에 앞으로는 ‘쓰담 달리기’라는 표현을 쓰셨으면 합니다.

기사 한 귀퉁이에선 ‘옐로카펫’도 보였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어린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국제아동인권센터가 고안한 교통안전 시설인데요, 학교 근처 횡단보도에 삼각형 모양의 구조물 또는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것을 보셨을 겁니다. 상단엔 태양광 램프를 부착해 낮 동안 전력을 충전했다가 밤에 램프가 켜지면서 보행자를 안전하게 비추고, 바닥과 벽면에는 노란색 알루미늄 스티커를 부착한다고 합니다. 서울의 한 학교 앞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은 형태가 조금씩 변형된 상태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명칭도 다양해졌는데요, 단원구에선 노랑둥지로, 광진구에선 노랑안전자리로 부릅니다. 같은 목적으로 비슷하게 설치한 것을 두고 지자체마다 명칭을 달리하는 것은 이용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가 권고한 ‘노랑고깔’을 통일해 써보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이번 글로 공공언어와 쉬운 우리말 연재를 마칩니다. 짧은 기간 광범위한 공공언어 영역 가운데 주로 뉴스 언어를 살펴보았는데요, 앞선 글에서 보셨듯 뉴스 언어에서 자주 지적된 문제는 영어 사용과 전문가들이나 이해할 법한 전문 용어 사용입니다. 공공언어와 뉴스는 누가 보아도, 누가 들어도 문턱 없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모든 국민이 소외됨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 공공언어와 뉴스 언어가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여담입니다만, 한글날을 맞아 국토교통부는 바라스트 레큐레이터(자갈 정리 장비), 에이티에스(열차 자동 정지 장치), 신호모진(신호 위반), 고상홈(높은 승강장)과 같은 어려운 용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었습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한글주간 행사에 참여하고 행사도 준비했는데요, 순화어 퀴즈 행사를 준비하며 배포한 포스터에 ‘알아맞히기’를 ‘알아맞추기’라고 잘못 쓰셨더군요. 그간의 노력이 오자 하나로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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