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제4형사부 4일 합동수행단 청구 재심 개시
유족 "돌아가신 할머니, 행방불명 삼촌 애타게 찾아"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날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유족들이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날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유족들이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74년 전 군경에 불법 체포돼 내란죄 등으로 총살 또는 행방불명된 제주4·3 희생자 30명에 대한 법원의 직권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4일 오전 검찰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열다섯 번째로 청구한 직권 재심 공판을 열고 희생자 3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대상자들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내란죄 등으로 불법 군사재판에 회부돼 유죄 판결을 받고 형무소 등에서 수형인 생활을 하다 총살 또는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이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제주4·3사건은 한국전쟁 이후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희생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공권력과 이념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이고, 유족들은 수십 년 세월 동안 희생자들을 가슴에 묻고 가슴 아픈 세월을 보내왔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희생자 측 변호인은 이날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수형인 생활을 하거나 행방불명됐다"며 "이 사건 당시 공소장이나 판결문 등 증거들이 없고, 체포 경위를 목격한 진술만 봐도 불법인 걸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30명의 피고인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먼 곳으로 끌려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평생을 안고 살아왔을 유족들의 한도 풀리길 바란다"며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의 진술이 이어졌다.

고(故) 홍인식 희생자의 조카 김중한씨는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삼촌은 바닷가 동네에 살았다. 당시에 소라를 잡으러 나갔다가 방파제 위로 경찰과 군인들이 지나가니까 무서워서 언덕 옆으로 숨었는데, 경찰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보고 잡아갔다"고 말했다.

고(故) 김석상 희생자의 딸 김영숙씨는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잡혀가셔서 저는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갑자기 집에 들어온 경찰 두 명에게 끌려갔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아버지 유해는 공항에서 발견됐고 올해 2월10일날 다른 희생자들과 영결식을 했다"며 4·3 유족들에게 꼭 DNA 검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희생자는 제주4·3의 광풍을 불던 당시 군경에 의해 연행돼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1949년 12월께 출소한 뒤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내다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에 의해 또다시 체포됐다.

이후 제주국제공항 부지인 정뜨르비행장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정뜨르비행장은 예비검속자에 대한 무처별 즉결처분이 이뤄졌던 대표적 학살지다.

유족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재판부는 희생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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