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
글로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던 브론테 자매
11월 7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뮤지컬 '브론테' 공연사진  ⓒ네버엔딩플레이
뮤지컬 '브론테'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 시와 소설을 쓰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이들은 각각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 등을 집필하며 영문학사에 족적을 남겼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뮤지컬 ‘브론테’는 브론테 자매를 다룬 뮤지컬이다. 묘지 옆에 사는 브론테 자매는 저주받았다 손가락질받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시와 소설이 있기 때문이다. 자매들은 서로가 쓴 시와 소설을 공유하며 서로의 재능을 믿고 지켜봐 준다. 그러나 어느 날 자매들에게 한 편지가 도착한다. 보내는 사람을 알 수 없는 편지 한 통은 샬럿에게는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를, 에밀리에게는 자신을 믿으라는 확신을, 앤에게는 너만이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편지 이후 자매의 삶은 흔들린다.

뮤지컬 '브론테' 공연사진 ⓒ네버엔딩플레이
뮤지컬 '브론테'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뮤지컬 ‘브론테’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루면서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단점을 ‘편지’라는 미스터리한 소재를 통해 해결한다. 편지는 우애 깊은 자매들에게 갈등을 심어주는 한편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이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힘이 된다. 편지라는 소재를 쓰는 뮤지컬이 이미 많이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익숙함이 느껴지지만, 평범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힐 만 하다.

시와 소설을 쓰며 자유를 되찾고 성장해나가는 브론테 자매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시대적 한계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자매들끼리만 공유하고 있던 그들은 샬럿의 추진에 따라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이라는 필명을 써서 시집 출간에 나선다. 시집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는 못하지만, 브론테 자매들이 작가로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자유롭지 못했던 이들이 꿈꿨던 자유는 관객들에게 전해져 무슨 일이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의 씨앗을 심는다. 샬럿의 한 마디 “우리 글이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줄 거야”는 브론테 자매에게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우리를 옥죄일 때/우리는 서로를 부르지/Furor Scribendi/글쓰기에 미친 인간들(넘버 “글쓰기에 미친 인간들”)

뮤지컬 '브론테'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뮤지컬 '브론테'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것은 매끄럽지 않은 내용 전개와 앤의 부족한 서사다. 특히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갈등을 빚으며 성격이 눈에 띄는 샬럿과 에밀리와는 달리, 앤은 두 사람의 중재자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자신의 특성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앤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조금의 힌트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배우들의 열연이 상쇄한다. 슬픔의 감정을 휘몰아치듯 표현해야 하는 샬럿 역할의 경우 그의 연기에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조민영 연출, 성재현 작, 강지혜, 이봄소리, 허혜진, 김려원, 이아름솔, 김이후, 이휴, 송영미, 이아진 출연. 11월 7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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