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여성친화도시 ⑰]
여가부 여성친화도시 예산 고작 1억3000만원
지자체 예산·역량이 사업 좌우...결국 천차만별
여가부-지자체 간 소통도 부족
철마다 인사 이동...업무 단절 반복
전담인력·부서 둔 지자체는 소수
부서 간 협업 동참 유인도 부족해 

‘여성친화도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현장의 여러 고충을 살피고, 여성친화도시의 의의에 걸맞은 사업 방향성을 짚어볼 때다. 여성신문은 여성친화도시 사업 추진 경험이 있는 공무원, 연구자, 민간활동가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여성가족부 웹사이트 캡처
‘여성친화도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현장의 여러 고충을 살피고, 여성친화도시의 의의에 걸맞은 사업 방향성을 짚어볼 때다. 여성신문은 여성친화도시 사업 추진 경험이 있는 공무원, 연구자, 민간활동가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여성가족부 웹사이트 캡처

2022년 우리나라 ‘여성친화도시’는 95곳. 전국 230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약 41%다. 2009년 전북 익산시가 1호로 지정된 이래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지자체들의 관심이 높다. 성평등 문화 확산, 도시 경쟁력 강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 이미지 확보 등 이점이 많아서다.

다만 시행한 지 10년이 넘은 정책인데도 대중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여성친화도시가 돼서 무엇이 좋은지 잘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공무원들조차 그렇다. 

여가부 여성친화도시 예산 고작 1억3000만원
지자체 예산·역량이 사업 좌우...결국 천차만별
여가부-지자체 간 소통도 부족

왜일까.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지자체들이 부딪히는 문제에 답이 있다. 예산 부족,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사업, 지역별 추진현황·노하우가 공유되지 않고,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업무가 단절되고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 등이다.

먼저 여성친화도시가 된다고 해서 여성가족부에서 사업 예산이 나오지는 않는다. 지자체와 여가부가 협약을 맺고 추진하는 사업인데, 정부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지자체 재원과 지자체장, 공무원의 의지에 따라 사업의 규모와 질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정부 사업과도 편차가 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문화도시’ 사업을 보자. 선정된 지자체에 5년간(2024년~2028년) 최대 200억원(국비, 지방비 각 100억원)이 투입된다. 반면 여가부가 편성한 2023년도 여성친화도시 추진 관련 예산은 올해와 같은 1억 3000만원이다. 사업 관계자 교육 예산이 3000만원, 나머지는 컨설팅, 이행 점검 예산이다. 지자체의 시민 대상 아이디어·홍보 콘텐츠 공모전 예산이 보통 이 정도다. 최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더 적게 느껴진다.

여가부와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 간 소통이 활발하지도 않았다. 정기 간담회도 없다. 취재하며 만난 사업 담당 공무원들은 오히려 기자에게 “요즘 여가부 분위기는 어떠냐” “최근 담당 사무관이 바뀌었다는데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인터뷰? 업무 파악부터 하고요”
철마다 인사 이동...업무 단절 반복
전담인력·부서 둔 지자체는 소수
부서 간 협업 동참 유인도 부족해 

공무원 순환보직제도 한계다. “익숙해질 만하면, 좀 해볼 만하면 인사가 난다”. 민선 8기 출범 후 갑자기 인사이동이 있었던 지자체에 취재를 요청하면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를) 하고는 싶은데 저희 팀장님, 과장님이 아직 업무를 파악하지 못하셨어요. 공부 좀 하시고 나서 하면 어떨까요?”

여성친화도시 담당자의 업무 경력은 평균 10.5개월에 불과하다(경기도여성가족연구원, 2020). ‘젠더전문가’, ‘양성평등전문관’ 등 전담인력, 전담부서를 둘 수 있도록 조례를 제·개정한 지자체도 있지만 소수다. 업무 노하우를 쌓거나 발전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다.

부서 간 협업 어려움은 여성친화도시 담당 공무원 누구나 토로하는 문제다. 여성친화도시 사업을 맡는 여성 관련 부서들은 소위 ‘비인기 부서’, ‘힘 없는 부서’다.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데, 여성친화도시가 무엇인지,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공무원마다 제각각이다. 

여성친화도시 업무를 전 공무원의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식으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지자체도 있다. 성과평가(BSC) 제도에 여성친화도시 사업 추진을 공통 지표로 넣는 식이다. 부서별로 여성친화도시 사업 관련 세부 과제를 선정·추진하도록 하고, 우수 부서에 상을 주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센티브가 더 필요하죠. 다른 공무원들이 ‘이걸 하면 우리가 얻는 게 뭐냐’고 물어요. 여가부가 현판만 주지 말고 실질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하죠.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니 ‘(여성친화도시 사업에) 국비가 얼마나 들어갔나 조사해봐야 한다’는데, 국비가 좀 들어오면 좋겠네요.” (경상도 지역 A공무원)

“코로나19 이후로 공무원들 업무 피로도가 심각해요. 저희도 여성친화도시 업무를 하면서 질병·재해 대민 지원, 기타 행사 지원을 다 해요. 새롭고 번뜩이는 사업을 하고 싶어도, 이런 시기에 일 벌이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여성친화도시 업무는 담당자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정말 많은 걸 좌우해요.” (경기 지역 B공무원)

“공무원 내부망에서 시작된 젠더 이슈 논쟁이 남녀 갈등으로 커져서 문제가 된 적 있었어요. 그 후로 ‘여성’ 꼬리표가 붙은 일은 손대기 꺼리는 분위기예요. 단체장의 공약사항이나 관심 사업이 아니라면 굳이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죠.” (서울 지역 C공무원)

시민참여단 운영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지역민의 눈으로 일상의 차별이나 불편사항을 찾아 개선을 제안하고, 지역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던 여성들에게 주체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도입됐다. 실제로는 안심귀갓길, 공공화장실 시설물 등을 점검하는 자원봉사성 안전 감시 활동에 그친다. 50대 이상 중노년 여성이 대다수라 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시민참여단의 활동 내용과 단계별 역량 강화 목표 설정, 점검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지자체는 많지 않다.

여성친화도시는 여성을 포함해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사진은 여성친화도시 공식 로고. ⓒ여성가족부
여성친화도시는 여성을 포함해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사진은 여성친화도시 공식 로고. ⓒ여성가족부 

‘모든’ 시민보다 ‘모든 소수자’ 위한 사업
사업 취지·방향성 되짚을 때

‘모든 지역민’을 위한 보편복지 사업에 ‘여성친화도시’ 꼬리표가 붙는 경우도 많다. 여성친화도시의 취지와는 다르다. 여성을 포함해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가 주인공이다. 약자들이 행정가, 의회, 전문가와 소통·협력하며 사회 참여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다. 

여성친화도시 전문가인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은 “여성친화도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성평등 목표 달성 또는 성평등 수준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예컨대 “한두 개의 시설 설비를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지역사회 생활환경이 만드는 성별 격차나 여건의 차별이 완화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리모델링 과정에 지역 여성이 참여하고 행정과 여성 간에 정보와 요구를 공유하면서, 리모델링된 시설을 어떻게 이용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장기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여성친화지정도시 사업 현황과 과제, 2016)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현장의 여러 고충을 살피고, 여성친화도시의 의의에 걸맞은 사업 방향성을 짚어볼 때다. 여성신문은 여성친화도시 사업 추진 경험이 있는 공무원, 연구자, 민간활동가 등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어봤다.

 

이어지는 기사▶ “여가부 폐지돼도 ‘성평등 정책’ 잘하는 지자체가 뜬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479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