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직원 당직 줄이겠다”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16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포스트잇을 작성하고 있다.ⓒ홍수형 기자
16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홍수형 기자

스토킹 범죄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결국 스토킹 범죄를 키웠다. 이번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드러난 사법부·서울시의원·서울교통공사 등의 발언이 이를 증명해준다.

지난 14일 밤 피해자 A씨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전주환에게 살해당했다. 역무원인 A씨는 자신의 일터인 신당역에서 충실하게 일하던 중이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0월 불법촬영 혐의로 전씨를 고소했고, 3개월 뒤인 올해 1월 스토킹 혐의로 2차 고소했다. 1차 고소 때 경찰은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2차 고소 때는 경찰조차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불구속 기소된 전씨는 1심 선고 바로 전날 범행을 벌였다. 만약 피의자가 구속됐다면 이번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전씨뿐만이 아니다. 스토킹이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으나 피의자가 구속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스토킹처벌법 접수 및 처리현황을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검찰이 처분한 스토킹 사건 3182건 가운데, 구속된 건수는 4.8%(154건)에 그쳤다.

서울교통공사의 책임 추궁도 이어졌다. 교통공사는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의 불법촬영 사건을 여성가족부에 통보하지 않았다. 또 전씨를 직위해제하고 1년간 징계 내리지 않았다. 신당역 스토킹 사건과 관련한 해결책으로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여성 직원들의 당직을 줄이겠다”고 말해 비판을 받고 있다.

스토킹이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부터 문제점이라는 지적이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스토킹은 상대적으로 죄질이 중하지 않은 범죄인 폭행죄나 협박죄와 같이 반의사 불벌죄로 남아있다”며 “반의사불벌이 규범적인 측면에서 범죄의 중함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반의사 불벌죄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반의사 불벌죄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가해자 처벌이 불가할 수 있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토킹처벌법 입법 당시 여성계에서도 이 규정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장애가 되고,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 범죄나 보복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해왔다.

승 연구위원은 “스토킹처벌법과 함께 스토킹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스토킹피해자 보호법)이 같이 나왔어야 했는데 올해 4월에서야 법안 발의가 됐고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며 “피해자 신변안전조치 등이 빠져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조속히 통과돼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6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포스트잇을 작성하고 있다.ⓒ홍수형 기자
16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포스트잇을 작성하고 있다.ⓒ홍수형 기자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홍수형 기자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홍수형 기자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도 스토킹을 사소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상임대표는 “‘계속 연락하면 안 받으면 된다’, ‘좋아해서 연락하는 사람을 처벌해야 하나’ 이 정도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스토킹 범죄가 살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서 봤지만 조직폭력 범죄나 정치 사범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런 문제는 많았고 그때마다 대책을 발표했지만 말뿐이었다”며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지가 없어서다”라고 꼬집었다.

송 상임대표는 근본적인 원인은 성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별을 바꿔 생각했을 때 이런 식으로 처리했을까’ 하는 사법 당국의 성차별”이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심각하다고 생각할지언정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심각한 것은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성차별의 문제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해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김 장관의 발언이 여성계의 반발을 사자 여가부는 여성혐오 범죄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 모습 ⓒ홍수형 기자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 모습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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