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 13주기 추모제 해남 생가에서 열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그 눈빛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생전에 시인이 즐겨 불렀다는 양희은의 노래가 무덤가에 울려 퍼진다. 멀리 영광에서, 서울에서, 1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의 여자들이 둘 셋 나뉘어 술을 따르고, 소녀들이 추모사를 낭독한다. 숙연한 분위기도 잠시, 머리 위엔 올해도 어김없이 흰나비가 나타나 모인 이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B6-5.JPG

“전에는 고정희를 아는 사람들이 왔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통해 연결되고 있어요. 13년 전, 고정희를 빗속에 묻으며 이 사람이 역사가 되겠구나 싶었는데, 여성사, 문학사에서 정말 역사가 되어 가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고정희 시인의 무덤에서 치른 추모제.▶

'또하나의문화'의 박혜란 이사는 “올 때마다 새삼 그리움이 커진다”고 감회를 전한다.

~B6-6.JPG

무덤가를 돌아 내려온 시인의 생가. 그의 방은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낡은 전축과 벽에 걸린 사진, 빼곡이 들어찬 문학 서적, 작은 소품 하나하나 평소 시인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고개를 들면 시원스레 펼쳐진 논과 산이 한눈에 들어와 앉는다. 참가자들은 시인을 생각하며 조약돌에 그림을 그려 작업실 창가 앞뜰에 놓아두었다.

“옛날에는 언어가 운동권 느낌이 있어 감수성에 안 맞고 거부감도 있었는데, 요즘은 연시집을 읽고 친구들과 같이 얘기를 나누곤 해요.”

시인의 10주기 추모제를 준비한 '소녀들의 페미니즘' 멤버 원은 현재의 인간관계, 직업 등 사적인 고민을 풀기 위해 고정희의 시를 읽는다고 한다.

“제도 속에 안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정희 시인의 존재가 롤모델이 됐어요.”

또 다른 멤버인 바람의 시인에 대한 느낌이다.

“<아름다운 사람 하나>라는 연시집이 너무 좋아 7, 8권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주었어요.”

“고등학교 때 처음 고정희 시인의 시를 읽었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주변과 사회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시인을 기억하고 만나는 방식도 다양하다.

“벗들을 중심으로 고정희를 살려내기 시작하면서 문학인, 동인 차원을 넘어 차세대, 일반 여성들까지 아우르게 됐습니다. 정책적으로 띄워주는 남자 시인들과 달리 고정희는 아래에서, 여성주의적으로 복원한다는 의미가 있죠. 고정희뿐 아니라 이름 없이 살다간 수많은 여성 문화인들을 여행이란 틀 안에서 만나고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박혜란 이사의 설명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고정희를 일컬어 “한편에서는 여성의 고통을 가볍게 아는 '머스마'들에 치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의 고통을 가볍게 아는 '기집아'들에 치이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누구보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그가 이 시대에, 세대를 넘나들며 소통의 매개가 되고 있다. 조한 교수는 “소녀들이 10주년 때 추모제를 준비하며 '고정희'를 읽어내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고 전한다.

가부장적인 지역 문단과 남자문인들에 의해 한때 '처녀귀신' '시집 못 가고 죽은 누이'에 머물렀던 고정희는 해를 거듭하며 그렇듯 여성들의 가슴 속에 갖가지 색깔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임인숙 기자isim123@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