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고정희 다시 보기 작업 활발

고정희문화제, 여성문화 관광코스 워크숍 등

한국 여성해방 문학의 본격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여성, 민중의 현실을 살아 숨쉬는 언어로 표현해 온 고정희. 최근 해남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을 주축으로 시인 고정희의 현재적 의미를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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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시인의 13주기 추모제와 더불어 해남 미황사에서 열린 '여성문화 테마관광코스 개발 전문가 워크숍'에선 시인을 찾아온 여성,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해남 지역의 여성활동가 그룹인 '해남 여성의 소리' '땅끝 문학회'회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해남 미황사에서 바라본 노을 풍경.

“고정희 시인은 이 땅을 떠났으면서도 여전히 이 땅을 떠나지 않고 남아 무수한 만남을 주선하면서 숨결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그 숨결은 죽은 예술가와 산 예술가의 만남을 주선했고 서울에 사는 사람과 지방에 사는 사람들 간의 만남을 주선했으며, 장년과 소녀 세대의 만남을 주선했고 시민사회와 정부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또 시민사회와 관광산업의 만남까지 연결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가 해남 여성문화 테마기행의 목적을 설명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조한 교수는 “고정희 시인은 여성 유목민 시대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고정희 시인을 통해 또문과 지역 여성, 소녀들이 만나왔듯 고정희의 시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 앞으로 해남으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내년부턴 전국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즐거운 소녀들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때마침 올 '고정희문화제'가 6월 1일부터 26일까지 '양성평등'을 주제로 한 청소년 백일장, 거리 시화전, 문화공연, 해남여성영화제 프로그램으로 해남군 일대에서 열리는 등 지역에서 시인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활발했다.

“해남은 여름이면 손으로 박박 긁어도 바지락이 나올 만큼 풍요로운 곳이에요. 매년 6월 문화제를 준비하고 고정희 시인을 만나는 과정은 행복하지만 농번기 때 일손이 없어 힘들어하는 농민들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해남에서 고정희를 만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 왔다”는 '해남 여성의 소리'김미옥 교육팀장의 일성이다.

“해남에서 고정희와 만나며, 혹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이 그의 시에 녹아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해남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 먹거리, 공동체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서울에서 단순히 관광 오는 것은 고정희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남' 속에서 고정희 시인이 살아나고 시인의 미래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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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여성의 소리'이명숙 회장은 “폐교 위기에 놓인 작은 학교가 여성들의 힘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공동체가 살아나고, 고정희 시인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해남 여성의 소리' 이명숙 회장은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 고정희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늦은 시간까지 둘러앉아 해남과 고정희 생가, 고정희의 삶을 잇는 프로그램을 여행이란 틀 안에 어떻게 담을지 논의한 참석자들은 “'관광작품' 없이는 '관광상품'도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여행의 소소한 일정을 함께 준비한 (주)다음 레저 홍순정 대표는 “7대 3 비율로 여자들이 여행을 많이 가지만 기존의 여행은 여행객이 주인이 될 수 없던 여행이었다”며 “관에서 일괄적으로 터에 집만 지어주는 것보다 그를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소품을 마련해 두는 등 문화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광부가 후원한 이번 워크숍에는 김찬 문광부 공보관과 최진 여성문화 TF팀장이 동참하기도 했다.

“관광이 교통이었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관광이란 콘텐츠가 문화인 시대가 왔습니다. 고정희를 모르는 여성들도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 시절의 아픔, 여성으로서 문학한다는 것에 대해 자극을 받고 돌아갈 수 있겠죠.”

김 공보관은 여성문화 테마기행을 일컬어 “관광의 새로운 범주이고 이것이 관광자원, 관광상품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실험해 보기 위해서”라고 여행에 함께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잘만 되면 관광의 질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면서 “버스 타고 다니면서 시를 읽는 여행은 처음 봤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해남 여성의 소리'회원들이 준비한 다과를 앞에 놓고 작은 공연이 마련됐다. '소녀들의 페미니즘' 멤버였던 세나가 고정희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하늘에 쓰네'를 부르자, 한 소리꾼이 해남의 노동요인 '강강수월래'로 화답했다. 지역, 세대를 넘어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고, 그렇게 시인을 보낸 6월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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