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

-식민성·근대성·여성성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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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식민지 근대를 젠더 관점으로 접근, 그 안의 일상생활과 욕망 등을 가시화하고, 식민지 근대성이 갖는 성격을 풍부하게 규명했다. 저자들은 그 동안 식민지 근대는 역사와 시간성을 중심으로 거의 대부분 억압/저항, 제국주의/민족주의, 전통/근대, 수구/진보, 식민화/근대화와 같은 이분법의 틀에 따라 사회학적, 역사학적, 문학사적 담론들로 규명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에 식민지 근대를 젠더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서로 배타적으로 이해되어온 식민성, 근대성, 여성성을 단일한 체계가 아닌 복잡성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신여성을 급진적 자유주의 신여성, 마르크스주의 신여성, 기독교 계몽주의 신여성 등 다양하게 범주화해 그 차이를 규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신여성들은 당대로서는 특권층이었지만 남성지식인들 눈에는 희화화되어 나타났는데, 이렇듯 신여성들이 지식인 남성들에 의해 타자화되었다면 당대의 구여성들, 노동하는 여성, 농촌여성, 도시빈민여성들은 어땠을까.

저자들은 이들 또한 타자화된 신여성의 타자라는 점에서 이중타자화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중타자화된 하위주체로서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공적, 사적인 공간을 고찰할 때 신여성 일색의 접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문제의식하에 타자화된 하위주체들이 만들어내는 공적 공간, 모성공간, 복장공간, 부엌공간, 소비공간, 가사노동의 공간, 교육공간, 디아스포라의 풍경 등에 주목한다.

태혜숙 외 지음/여이연/1만5000원

송미령 평전

-장개석과의 결혼 후 정치행보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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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1897∼2003)은 20세기 중국사의 화두이자 대표적인 상징 아이콘이다. 일각에선 “송애령은 돈을 사랑했고 송경령은 중국을 사랑했으며, 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평한다. 이들 세 자매의 인생역정은 판이했다. 첫째인 애령은 산서성 최대의 금융 재벌이었던 공상희와 결혼했고, 둘째 경령은 중국혁명가 손문과 결혼했으며, 미령은 국민당 총통 장개석과 결혼해 중국 현대사에 '송가왕조'의 족적을 남겼다.

미령은 언니 경령과 함께 1908년 11살의 나이로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 1917년에 귀국한 그는 10년간 YWCA 활동, 영화검열위원, 아동노동위원을 지냈다. 장개석과의 결혼은 미령의 인생을 바꾸고 그를 중국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시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퍼스트 레이디가 되고자 한 미령의 권력욕을 일컬어 언니 경령은 “둘의 결합은 정치의 일부분이지 사랑이 아니다”고 말한다.

송미령은 1936년 '서안사변'에서 장학량에게 납치 감금된 장개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서안으로 달려가 그를 구해내는 용기와 외교력을 보여주었고,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의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쳐 '차이나로비'의 주역으로 대접받았다. 탁월한 언변과 정열로 전 세계가 주목한 여성이었으나, 그의 권력 지향성과 허영심, 오만함, 정치력 행사가 놓인 맥락은 중국 현대사 내에서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진정일 지음·이양자 옮김/한울/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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