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재발 유발하는 동물보호법 18조
해외에선 ‘감응력 있는 존재’로 정의
민법 개정 요구 ‘물건’→‘물건과 동물’

강아지가 담긴 가방으로 안내판을 가격하는 모습.ⓒ동물권 단체 케어
강아지가 담긴 가방으로 안내판을 가격하는 모습. ⓒ동물권 단체 케어

지난 8월 평택역에서 학대당하는 강아지 ‘크림이’의 영상이 충격을 안겼다. 크림이의 주인 A씨는 목줄을 단 크림이를 가방에 묶은 뒤 이를 내던지고, 발로 차는 등의 행위를 반복했다. 크림이는 A씨와 분리돼 수원시청의 협력병원에 입원했지만, 곧 자신을 학대한 A씨에게로 돌아갔다. 크림이가 돌아가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법 때문이었다.

동물을 보호하지 못하는 동물보호법


동물보호법 18조에 따르면, 보호기간이 지난 후 소유자가 동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 돌려줘야 한다. 김영환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보호기간이 제대로 산정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며 “기준이 없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돌려주는 일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크림이가 주인에게 돌아가기까지 4일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동물보호법 1조에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의 방지’라는 법의 취지가 명시되어 있는데, 그런 취지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동물보호법 18조 때문에 동물 학대가 재발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학대 예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대의 경험이 있는 사람의 소유권 제한”이라며 “피학대 동물은 물론이고 다른 동물에 대한 소유권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Pixabay
ⓒPixabay

민법상 물건으로 취급받는 동물


동물은 민법상으로는 물건이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의 송시현 변호사는 “이로 인해 동물학대자의 소유 물건으로 취급돼 학대 동물을 소유권자에게서 분리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문제점을 인식해 지난해 10월 민법 ‘제4장 물건’을 ‘제4장 물건과 동물’로 수정하고, 제98조 2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돼 국회로 넘어왔지만, 아직 상임위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개정안 도입으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인식이나 사법부, 입법부가 동물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명시한 국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는 20~30년 전 민법을 개정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최근 10년 새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룩셈부르크 등의 국가들은 동물을 ‘감응력 있는 존재’(sentient being)로 정의했다. ‘감응력 있는 존재’란 주변 환경을 느끼고 자각할 수 있으며 긍정적, 부정적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존재를 뜻한다. 송 변호사는 “동물의 복지를 충분히 고려하고 동물이 보다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호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