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공동육아
내가 경험한 공동육아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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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해야 부모도 행복하다
“21세기형 가부장제 극복 운동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 자부



내가 공동육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1990년쯤부터 아니었나 싶다. 1987년생인 딸을 당시 동네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던 나는 상당한 분노 상태에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이것은 나와 아이의 불행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부터라도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보육에는 공적인 관심을 가지리라 다짐하고 있던 차에, 당시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정병호, 이기범 선생님이 주도하는 공동육아연구회 모임을 함께하게 되었고 1994년 11월에 둘째아이를 낳고 1995년부터 공동육아어린이집 설립 준비를 하면서 공동육아와의 실한 인연이 무르익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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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아내가 장보는 동안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남편들. 행복한 보육 환경을 위해선 가부장제 의식 극복과 함께 '공동육아'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



<사진·민원기 기자>




하나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6개월 여의 기간 동안 퇴근 후 밤늦은 회의, 함께 할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홍보, 공동육아 정신과 운영 원리를 배우기 위한 교육, 주말마다 집 보러 다니기, 개원 두어 달을 앞두고부터는 개원 준비를 위한 거의 주말마다 노역(勞役)을 겪고 나서 탄생한다.



문을 열고 나서 평조합원은 월 1회 정도 있는 교육이나 청소, 회의에 참석하면 되지만 이사장을 맡은 사람들은 그 기간 동안 주말의 반은 희생해야 한다. 희망이야 월 1회 한두어 시간 만에 쌈박하게 끝내는 이사회이겠으나 실상 운영해 보면, 예기치 않은 이런저런 사태에 격주에 한 번은 장시간 회의를 하게 된다. 그런데 한 번씩 이사는 돌아가면서 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맞벌이 부부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일들이다. 그런데도 1994년 10월 첫 개원한 '우리 어린이집'을 기점으로 해서 지금은 50여 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하다.



나는 공동육아를 21세기형 여성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공동육아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협동하여 핵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일정 기간 동안 비가부장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운동이다. 공동육아에서는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하다. 아들은 지금도 매일 산에 다니고 모래밭에서 뒹굴다 놀다시피 하고 여름이면 큰 고무 통에서 물놀이 하던 어린이집 시절이 자기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한다.



공동육아에서 계발되는 부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토록 넘치는 부성을 억압해 온 가부장제가 참으로 남성도 무지 억압했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여기에 공동육아의 부모 혹사(酷使)가 혹사만은 아닌 비결이 있기도 하다. 둘째로 공동육아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죽도록 훈련시킨다. 자신의 장단점과 기타 인간성을 바닥을 드러내 보이면서 참여를 하게 된다. 한 세대 이 훈련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성숙한 지점에서 공동육아와 또 다른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 훈련은 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셋째로 공동육아는 가족문화의 변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양성적인 아이를 길러내는 경향이 있다. 지금 4학년인 아들은 축구, 목검을 휘두르며 노는 걸 좋아하지만 동시에 곰을 업고 우유를 먹이고 재워주는 놀이도 하면서 하루 빨리 아빠가 되어 자기 애를 그렇게 키워보고 싶다고도 말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육아가 여성운동이라고 내가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건, 실제 초기 척박한 공동육아를 일군 두 살림꾼이 모두 젊은 여성주의자였고 이후 공동육아의 중요 리더들도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박혜원과 신정혜, 두 후배의 이름을 넘치는 애정을 실어 불러 보게 된다. 아직 사회에서 공동육아가 알려지지도 않던 시절, 사당동 지하 사무실에서 몇 해 겨울(95~98년)을 나면서 밤새 회보를 만들고 어린이집을 20여 곳까지 불려놓은 장본인들이다. 후에 공동육아사가 씌어진다면 난 이 두 사람의 구술사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 그리고 이들이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내가 부원장으로 일할 때 함께한 서현숙, 손이선씨와 페다고지스트 원장 선생님들, 김미령 선생님과 공동육아의 이론가로 우뚝 선 이부미 선생님, 이 여성들 모두 내게 여성의 역량을 일깨워 준 동료들이었다.







김정희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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