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시내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예쁜 여성분들과 운동하니까 되게 설레요.”

운동복을 입은 남성이 인터뷰 중에 수줍게 웃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유료 회원을 자랑하는 운동 플랫폼의 광고영상 중 한 장면이다. 체육관들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속칭 ‘물 좋은 체육관’을 마케팅의 포인트로 삼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처럼 ‘운동하면서 여성도 만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마케팅은 말할 것도 없이 여성 혐오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운동을 배우러 온 여성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품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체육관이 그토록 남성 중심적이면서도 남성 전용으로 운영하거나 여성을 아주 배제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체육관은 여성에게 열려 있고 호의적이다. 특히 체육관에서 만난 남성과 사귀는 여성의 경우 ‘**의 여친’으로 불리며 거의 남성으로 이뤄진 이너써클 내에 진입하기가 수월해진다. 알려진 대로 체육관처럼 커플이 생기기 쉬운 장소도 없다. 뒤풀이나 엠티 등의, 의도가 뻔한 친목 활동을 거쳐서 이른바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진다. 심지어 운동을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도 위계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체육관의 오너나 코치도 여성 회원과 사귀는 걸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이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면 내가 다녔던 체육관의 오너이자 헤드코치가 있었다. 그는 꽤 많은 여성 회원과 사귀었는데 언젠가부터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체형, 얼굴 생김새, 이미지가 비슷한 여성들이 처음엔 모두 긴 머리로 등장했다가 곧 일제히 단발머리가 되곤 했다. 알고 보니 오너가 집착에 가깝도록 단발머리를 좋아해서 여성들이 그의 요구대로 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나중에 그들은 체육관의 마스코트로 등극했다. 다양한 운동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목격한 나는 이제는 처음 간 체육관에서도 그곳의 마스코트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전형적이다. 당연히 운동을 잘하고 언제나 산뜻한 운동복 차림이며 모두에게 상냥하다. 여기에 무급으로 보조 코치, 매니저, 여성 회원들의 구심점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체육관의 SNS 계정에 여러 차례 등장하며 역시 무상으로 홍보 사진이나 동영상의 모델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의 여친’이나 마스코트나 여자친구 역할이 종료되면 언제나, 예외 없이 여성이 떠나고 남성이 남는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사람, 그가 확보한 단골, 그를 지지하는 세력 등 한마디로 실세가 전부 남성이므로 남성과의 사적인 친분이 끝난 여성은 ‘자연스럽게’ 추방된다.

만약에 이 글이 빈약한 경험에 근거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반대를 상상해보길 바란다. 여성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그의 남자친구가 마스코트가 되고 ‘**의 남친’이라고 불리던 남성은 사라졌는데 여성만 남는 경우도. 현실은 그런 부자연스러운 상상까지 갈 것도 없다. 여성 전용이나 압도적인 여초 체육관이 아니고서야 여성이 혼자 업장을 운영하는 일부터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기 때문이다.

양민영 『운동하는 여자』 저자.
양민영 『운동하는 여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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