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7곳 지자체, 조례 제정해 국제결혼 지원
결혼하면 1인당 최대 1,200만원까지 지급
인권위 "성평등 관점으로 사업 점검해야"

인권위는 4일 어린이날 100회를 맞아 인권위원장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홍수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와 같은 인구 증가 사업이 가부장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며 성평등 관점에서 사업 내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홍수형 기자

매매혼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와 같은 인구 증가 사업이 여전히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진정이 제기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이하 인권위)가 “성평등 관점에서 사업내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진정인들은, 피진정인인 A시장이 A시 명의로 ‘인구증가를 위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추진 협조문’(이하 협조문)을 법무부 출입국 대행기관인 ‘B 행정사합동사무소’(이하 행정사)에 발송하였는데, 협조문에 명시된 사업은 혼인 목적으로 입국하지 않은 유학생 여성을 국제결혼의 대상으로 삼은 차별적 시책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피진정인인 A시장은 행정사 대표가 지역 농촌 총각과 유학생 여성 간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을 제안했기에, 인구증가 시책을 담은 A시 명의의 협조문을 발송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행정사 측에서 A시와 협의 없이 임의로 협조문 내용을 수정해 인터넷에 게재한 사실을 진정인 측의 문제제기로 알게 됐고, 진정인 측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후 사업추진 검토를 중단했다고 답변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협조문 게시로 인해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였다거나 협조문을 주고받은 사실로 인해 불리한 대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인권위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진정을 각하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유학생 등 이주여성을 인구증가 시책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1990년대 이후 국제결혼이 급증하는 가운데, 2006년 정부가 발표한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사회 통합지원대책’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이 확산했다”며 “한국의 결혼이주여성 관련 정책이 이주여성을 출산 및 보육을 담당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고, 인구증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강원 화천, 충북 증평 등 전국 27곳 지방자치단체가 농촌 총각 주민이 외국인 신부를 맞이할 경우, 결혼 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국제결혼 지원 조례를 갖고 있다. 적게는 1인당 30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1,200만원까지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A시장 역시 A시 내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농촌 남성의 구체적인 수요나 해외 여성이 한국으로 이주한 목적의 다양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학생 여성과 농촌 비혼 남성의 결혼을 주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인구증가 관련 사업이 여성을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과 농사 등 가족 내 무급노동의 의무를 진 존재로 인식하는 가부장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A시장에게 성평등 관점에서 인구증가 관련 사업 내용을 점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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