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2019년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하면서 출범했다. ⓒ뉴시스·여성신문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2019년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하면서 출범했다. ⓒ뉴시스·여성신문

나는 사관학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08년 입학했다.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왔는데, 책꽂이 한 부분이 왜인지 비어있는 느낌이 들어 옆을 보니 룸메이트의 책꽂이도 마찬가지였다. 책꽂이가 비어있는 것이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진짜였다는 것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학교 지휘부에서 ‘불온서적’에 대해 단속하겠다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뺏긴 불온서적은 다름 아닌 지금도 스테디셀러인 『사다리 걷어차기』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이뿐 아니다. 나는 학교 측으로부터 ‘왜 경향신문을 구독하려 하느냐’고도 추궁 받았다. 당시 나는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두 종류의 신문을 신청했다. 내가 입시를 할 때만 해도 경향이 다른 신문의 사설을 보는 것이 논술 공부 방법으로 유행이었고, 그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이른바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알려진 리스트는 총 23권이었지만, 충성심의 발로인 것인지 학교 측은 이를 과대하게 해석해 생도들의 책꽂이를 쥐잡듯 뒤졌다. 부대에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불온서적 취급돼 압수되었다는 ‘웃픈’ 짤은 아직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 된다.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과 신문을 검열하고, 수업 중 했던 발언을 추궁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서 교수를 잡아가거나, 북한학 전공 교수의 메일을 해킹해 사찰하는 등의 행위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명박 ~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사찰이 부지기수로 이뤄졌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대놓고 기무사령부(現 안보지원사령부)에서 너를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를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군인뿐이 아니다. 국가정보기관들은 신원조사의 의무가 있는 공무원은 물론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사찰하며 무수한 존안자료를 생산해냈고, 존안자료는 국가 권력의 칼이 돼 온갖 공작, 회유, 압력에 사용됐다. 군인도 아닌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서 행해진 기무사의 광범위한 사찰행위는 유명하다. 지난 2019년,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공판 자리에서 “기무사의 정당한 첩보수집이다”, “대통령 국정운영 보좌 기관이라는 사명감도 있었다”고 항변했다.

사찰을 통한 국가 정보기관의 정보수집과 존안자료 작성은 비단 보수정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도 항상 꾸준히 진행됐다. 정권을 막론하고 ‘상대의 정보’를 손에 쥐고 패가 훤히 보이는 수 싸움의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유혹은 이기기 쉽지 않다. 소강원 전 참모장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기무사·국정원은 이 유혹에 힘입어 대통령 국정운영 보좌 기관이라는 명목으로 권력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다른 기관이 가지지 못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한을 누릴 수 있었다. 연대장 이상 되는 지휘관들이 기무사에서 준위라도 오면 절절맸던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탄핵정국 시기 기무사가 감히 국가전복을 꾀하고 계엄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으로 온 나라가 뒤집혔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결국 기무사를 없애지 못한 채 안보지원사로 간판만 바꿔 달았지 않은가.

왜 진보정권에서도 존안자료는 소중하게 다뤄질까? 그것은 존안자료가 인사검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요 고위공직자들의 인사는 존안자료를 통해 결정된다. 대통령실이 인사에서 실패라도 하면 종종 나오는 핑계가 ‘존안자료’이다. 존안자료에는 단순히 신원조사 내용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사찰을 통해 은밀하게 확인된 사생활이 속속들이 들어가기도 한다. 대통령실만 챙기는 것도 아니다. 단지 존안자료라고 불리지 않을 뿐이지, 수사와 정보를 다루는 기관은 모두 존안자료를 생성한다고 보면 된다. 우스갯소리로 인사철이 임박하면, 기무부대원들이 군인 아파트나 관사 담벼락, 화단에 숨어서 누가 누굴 만나는지 혹시 불륜은 아닌지, 상대의 정체는 뭔지 감시한다는 말도 있다. 사찰은 문서나 신원조회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암암리의 도·감청, 미행 등의 불법행위까지 동원된다. 여하튼 윗분들이 ‘보시기에 좋으신’ 양질의 문서가 나와 인사과정에서 별소리를 안 들으면 성공이라는 것이다.

정보기관들의 사찰행위는 들키거나 실제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됨은 물론 은밀한 뒤처리까지 함께 이루어지므로 불법행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고소를 해봐야 그마저도 시간을 끌며 자료를 파기해버리거나, 형법상 마땅히 적용할 중죄가 없어 가볍게 끝난다. 사찰에 대한 정보를 정보공개청구 해봐야 ‘국가 안보’나 ‘수사’와 관련한 사항이라며 비공개하기 일쑤다. 그렇게 암암리에 쌓인 자료는 인계와 인계를 통해서 보존되고, 권력 집단의 만일을 대비한 카드로 쓰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존안자료가 과연 인사 대상자의 역량이나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그럴 리가 없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남의 집을 뒤지고, 뒤를 캐고, 화단에 숨어 파내는 정보가 ‘질 좋은’ 정보일 리가 없다.

이러한 구태를 척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광범위한 신원조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일단 우리와 마주한실제 하는 적성 국가가 있고, 범죄예방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가 요구될 때도 있다. 특히 적이 누구인지, 집단인지 개인인지, 피해의 대상은 얼마나큰지 짐작하기 어려워진 현대 안보 위협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결국 요구되는 것은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감시, 정보활동 결과에 대한 투명성, 정보수집의 근거가 되는 법과 규정의 재정비와 촘촘한 가이드라인이다. 연초 있었던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 비공개에 대한 위헌 결정도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권을 득한 권력 집단 자체가 패를 훔쳐보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다.

어둡고 딱딱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은 이유는 그나마 간판이라도 바꿔 달게 했던 패널티와 눈치라도 챙겨야 했던 지난 정권에서와 달리, 앞서 말했던 ‘좋은 방법’은 고사하고 시대를 역행할 기미가 슬금슬금 보여서이다. 며칠 전 안보지원사령부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부대원들의 의견이라며 부대명을 ‘방첩사령부’로 개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감시 기능 약화와 고위 장교 인사 검증 시스템이 마비돼 부작용이 만만찮다며 토로한 모양이다. 경찰의 행정통제를 위한다며 경찰국을 신설하더니, 인사권한까지 틀어쥐고 있는 신임 경찰국장은 과거 ‘프락치 활동’ 논란에 휩싸여 있다. 새 정부의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는 도대체 언제 안정될 것인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남의 패를 훔쳐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 하겠고, 누구 하나 앉힐 수 없다고 한탄한다는 게 그저 ‘비웃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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