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재판부 “사법부로서 사죄”

서울중앙지방법원 ⓒ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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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일대에서 간첩 활동을 해온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일가족 5명이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77년 형이 확정된 지 45년 만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진아)는 지난 1일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고 김재민씨, 고 이포례씨와 이들의 자녀 3명의 재심 재판에서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김용규씨의 혼란스러운 진술에 맞춰 수사기관에서 반복되고 집요한 심문을 통해 피고인들의 진술이 재구성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잔혹한 국가 폭력이 개입됐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 "폭력 중에서 가장 극악한 폭력은 국가의 폭력"이라며 "막강한 인적·물적 조직을 가진 거대한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민씨와 이포례씨의 자녀는 "경찰이 쇠몽둥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비틀어 돌렸다"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잠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옆방에서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힘들었다" "아버지를 만났는데 산송장을 보는 듯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영장도 없이 이들 가족의 소유물을 압수했다며 압수물들은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간첩활동을 제보한 귀순 남파 간첩 김용규씨의 진술은 일관되지 않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1976년 당시 공안당국은 그해 9월 북한에서 거문도로 파견됐다가 동료 2명을 사살하고 경찰에 자수한 김용규 씨의 진술을 토대로 대남 공작원들의 간첩 활동을 지원한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수사기관은 김용규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김재민씨, 이포례씨와 자녀들이 거문도 지역 일대에서 대남공작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간첩활동을 돕거나 입북 모의를 하고 금품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김재민씨와 이포례씨는 1977년 각각 무기징역,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자녀들 역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자격정지 2년에서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았다.

5명 중 1명을 제외한 가족들이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 상고심 판단을 받았지만 형은 바뀌지 않았다. 이들 5명의 형은 같은해 그대로 확정됐다.

김재민씨, 이포례씨 사망 이후 이들의 자녀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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