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디지털로 무장한 네 여성의 질주, ‘지락실’이 흥하는 까닭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디지털로 무장한 네 여성의 질주, ‘지락실’이 흥하는 까닭
  • 김은영 고려대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 승인 2022.08.29 16:38
  • 수정 2022-08-30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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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뿅뽕 지구오락실’
‘뿅뿅 지구오락실’ 제작발표회 사진=tvN
‘뿅뿅 지구오락실’ 제작발표회 사진=tvN

달나라와 지구, 한국과 태국이라는 공간과, 현재와 Y2K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뿅뽕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 tvN)의 세계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옛날 옛적 달나라에서 절구질을 했던 토끼(토롱이)는 이제 달나라 뒷면에서 옥황상제가 운영하는 <우주떡집>에 고용된 단 하나뿐인 직원이 되었다. 격무에 시달리던 토롱이가 지구로 도망가자 옥황상제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세우고, 이에 4명의 지구 용사들은 토롱이를 잡으러 태국으로 출동한다. 여기까진 여타 버라이어티, 혹은 게임의 시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예측 불가한 지구용사들의 능력치에 미션 수행을 방해하며 재미를 유발하려던 제작진들이 농락당하면서 기존 버라이어티의 문법을 깨부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작진이 설정한 스토리 붕괴시킨
‘만렙’ 이은지·미미·이영지·안유진 

<지락실>은 연출자인 나영석 PD의 장점인 (해외)여행과 연예인이 결합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지락실>의 세계관과 지향점은 고전 <서유기>와 만화 <드래곤볼>을 합쳐 세계관을 만들었던 나영석 사단의 전작인 <신서유기>를 연상케 한다. <신서유기> 속 용볼을 찾으러 게임 지옥에서 고군분투하던 요괴들이 <지락실>에서 토롱이를 잡는 지구용사들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신서유기> 요괴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능력치 만렙인 지구용사들로 인해 <지락실>은 제작진들이 미리 설정했던 스토리 전개는 붕괴되고, 어떻게든 촬영을 이어가야하는 제작진들의 연이은 긴급회의로 프로그램의 내용은 변화를 겪는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강조하는 리얼리티 요소가 극대화되는 지점이자, 스토리가 여러 갈래로 펼쳐지는 비선형적인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는 세대 간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고 활용하는 방식의 차이가 만들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나영석 사단이 속한 X세대들이 성장 과정 중간에 디지털 미디어를 접한 ‘디지털 이민자’라면, ‘쌩스무살’부터 30대 초반인 지구용사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온 ‘디지털 원주민’이다. 

‘뿅뿅 지구오락실’ 사진=tvN
‘뿅뿅 지구오락실’ 사진=tvN

능수능란하게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출연진들의 행보는 제작진이 예상하던 것들을 뛰어넘는다. 출연진에게 해외에서 목적지만 주고 알아서 찾아오게 하는 ‘낙오’ 혹은 SNS 정보를 활용하여 토끼를 잡는 미션 해결은 이은지, 이영지, 미미, 안유진으로 구성된 MZ세대 지구용사에겐 별반 장애가 되지 않는다. 태국어라는 낯선 외국어는 번역앱을 활용하여 음성이나 사진 촬영을 통해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만이고, 최종 목적지로 가는 방법은 지도앱을 통해 최적의 경로로 가면 될 뿐인 것이다.

이에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를 활용해 토롱이의 출몰 힌트를 제공하는 동시에, 태국의 관광 명소를 알리고자 했던 제작진들의 의도는 한발 앞서 미션을 수행하는 지구용사들에게 허를 찔린 뿐이다. 그 결과 제한 시간을 남기고 여유롭게, 그리고 미처 예상치 못하게 속수무책으로 잡힌 토롱이로 인해 제작진들은 곤혹스럽고, 때론 굴욕을 느끼면서 계속해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능력 제대로 보여주는 MZ세대 출연진
유연함으로 대처하는 X세대 제작진

MZ세대로 통칭되는 출연진들의 거침없는 질주와 당하는 X세대 제작진의 대립적인 구도는 주요한 재미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방송에서 세대 갈등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MZ세대의 능력을 때때로 간과하던 윗세대에게 MZ세대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반대로 당혹스런 상황에서도 프로그램 완성을 위해 대안을 마련하는 X세대의 유연함과 책임감을 보게 된다.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인 출연진들은 제작진의 카메라에 담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알아서 짜고 능숙하게 담아낸다. 더 나아가 방송 콘텐츠를 십분 활용해 본인 계정·채널의 구독자와 소통도 하고 심지어 구독자 수를 늘리기도 한다. 방송사의 콘텐츠와 개인 콘텐츠가 동시에 만들어지고 윈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락실>은 디지털로 무장한 MZ세대 그들의 거침없는 행보와 어떻게든 분량을 뽑아 프로그램을 제작해야하는 X세대 제작진 간에 벌어지는 예측 불가 미션 수행 과정이 흥미를 자아내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신서유기> 요괴들과 <지락실> 지구용사 간의 콜라보를 기대하면서 한편, 아무도 제기하지 않은 격무에 시달린 토롱이의 근무환경과 이를 개선하지 않은 옥황상제의 갑질이 어떻게 해결될지가 궁금해진다.

김은영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김은영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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