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역사학대회서 신라, 고려, 조선 후기 여성의 정치적 입지 논의돼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력 행사는 어디까지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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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황후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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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귀족여성 복장.

최근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가 사회 각계에서 활발히 제기되고 있지만 여성사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소외돼 왔다. 지난 28일,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 한국사 분과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토대해 '여성과 정치 : 권력과 희생의 양면성'이란 주제로 신라부터 고려,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획득했던 정치권력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논의됐다. 연구는 황후, 왕비, 총부(남편이 먼저 죽은 맏며느리) 등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는 제한적이었으며,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한 여성들은 남성 중심적인 지배 질서 안에서 비난받거나 희생되어야 했다는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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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후기 명성황후다. 조선 후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명성황후를 조명한 국사편찬위원회 이민원 연구위원은 명성황후에 대한 당대 평가가 “국내 야사나 일본의 관공 기록, 언론, 잡지 등에서는 매우 부정적이고 실록이나 주연집 등의 명성황후 행록에서는 추모와 연민의 정이 담겨 있으며, 서양인들의 견문 기록에서는 무당과 미신에 대한 집착을 제외하면 비교적 긍정적이었다”고 밝혔다.

◀명성황후

그는 “명성황후가 대원군 하야 이후 본격적으로 권력의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고종의 친정 욕구, 왕자 책봉 문제로 인한 왕비의 원망과 위기의식이 주요 요인”이며 여기에 “대원군의 장기 집권에 반발한 세력, 즉 서원철폐에 반발한 유림과 권력에서 소외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세력, 대원군이 소외시킨 왕실 인물, 민응식, 민영익, 민영환, 민영준 등 왕비의 외척가문 인물 등이 협조한 것”이라 분석했다.

또한 이 연구위원은 “대원군 하야 이후 명성황후는 고종이 내외인들을 접견할 때 장막 뒤에서 청취하고 각종 인사 정책에도 관여하는 등 본격적으로 국정수행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면서 “명성황후의 권력이 어떠한 성격을 갖느냐는 명성황후의 역할이 고종의 용인하에 행해진 것이냐 여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근래 고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명성황후의 역할은 고종의 정책 수행을 지지해주고 조력하는 내조자였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으며, 명성황후의 역할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를 용인한 고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대인들은 고종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명성황후에 대한 비난은 신랄했다”고 이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두 번째로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시대 인조에 의해 희생된 소현세자빈 강씨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순구 편사연구사는 조선 시대에 유일하게 조선 땅을 벗어난 여성이었던 소현세자빈 강씨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소현세자빈 강씨는 조선 왕실에서 드물게 적장자의 어머니로서만이 아니라 적장자의 부인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라 평가했다.

그는 “소현세자빈 강씨가 조선 정치사상사에서 갖는 의미는 그가 왕손의 생산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세자의 부인으로서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인 데에 있다. 그러나 소현세자빈 강씨가 인조로부터 사사(사약)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총부였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본래 중국과 달리 총부의 권한이 강해 인조에게는 강씨의 존재가 위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분석했다. 나아가 이 연구사는 “소현세자빈 강씨가 10년간 청나라 심양에 머물며 선진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경제적인 부까지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고려와 신라 시대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권순형 이화여대 강사는 '고려시대 여성의 정치 권력 연구'에서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 충혜왕비 덕녕공주 등 원 간섭기에 원 공주 출신 왕비들은 제1비(妃)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고려 전기의 태후에 준하는 높은 지위를 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 공주들은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였으나 이는 원의 후광에 의한 것으로 후비 제도 자체의 발전이나 왕비 지위의 상승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원 공주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위가 전통적인 후비제를 문란하게 하고 고려 정치 불안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선주 경주대 교수는 '신라사회 여성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해 “신라시대에는 시조 혁거세의 비(妃)로 기록된 알영(閼英)의 탄생 설화가 신라의 건국신화에 혁거세와 함께 기록되고 있다. 후대에 알영은 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이라 칭해질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특히 주목할 점은, “이성(二聖)의 하나로 숭앙을 받던 시조비 알영을 발견, 양육한 사람으로 노구가 나오는데, 노구로 표기된 여성들은 단순히 늙은 여자가 아니라 왕이나 왕비를 키워내거나 왕의 자문 역할을 했던 정치적 유력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된 비구니 승직 도유나랑을 언급하며 “종교직책이지만 신라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부여한 정치 관직으로 여성도 관직체계에 포함되었다”고 분석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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