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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인대학 강의 준비물이 하나 더 늘어났다. 보통은 강의 끝나고 쉬는 시간에 잡수시라고 사탕을 가져가는데, 어르신들께 빈손으로 가기 민망해서 갖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습관이 돼 사탕을 준비하지 않으면 내가 괜히 허전하다. 단것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사탕 중에서도 특히 막대사탕을 받으면 손으로 잡고 쪽쪽 빨아 잡숫는 것이 재미있는지 아이들 같이 좋아하셔서 나까지 저절로 웃음이 나곤 한다.

그런데 강의 준비물에 추가된 것은 다름 아닌 가사다. 돋보기 없이도 잘 보실 수 있게 크고 진한 글씨에 여백도 넉넉하게 해서 만든 노래 가사 한 장을 꼭 챙겨야 한다. 복사해서 나눠드리고 같이 신나게 부르는 노래는 바로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라는 노래다.

1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 마음도 몸도 왕성합니다 / 칠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2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삽니다 / 팔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3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 아무것도 불만은 없이 삽니다 / 구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 재촉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4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 백세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 서서히 간다고 전해 주세요

곡조는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로 시작되는 개화시절 노래인 “학도가”에 맞춰 부르는데, 혹시 글자를 모르시는 분이라도 곡조는 대부분 아시기에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워주신다. 이 노래가 점점 퍼지다 보니 여기저기서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오는데 사실은 나도 모른다. 3년 전쯤 노인대학에 가보니까 커다란 궤도에 이 가사를 적어놓고 부르고 계시기에, 가사를 옮겨 적어와서 그분들이 부르시던 곡조 그대로 다른 어르신들께 가르쳐 드린 것이다.

딱히 누가 가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글을 노래용으로 고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일본의 조각가인 '세키 간테이'라는 분이 쓴 책 〈불량 노인이 되자〉(나무생각, 2001)의 뒤표지에 적힌 글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回甲(회갑) : 六十에 저승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지금 안 계신다고 여쭈어라 / 古稀(고희) : 七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이르다고 여쭈어라 / 喜壽(희수) : 七十七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부터 老樂(노락)을 즐긴다고 여쭈어라 / 傘壽(산수) : 八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이래도 아직은 쓸모 있다고 여쭈어라 / 米壽(미수) : 八十八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쌀밥을 더 먹고 가겠다고 여쭈어라 / 卒壽(졸수) : 九十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서둘지 않아도 된다고 여쭈어라 / 白壽(백수) : 九十九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때를 보아 스스로 가겠다고 여쭈어라 //

재미있는 것은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노래가 처음에는 “…육십부터”였다는 사실이다.

노인대학 궤도에서 내가 가사를 옮겨 적기 훨씬 전, 그러니까 노래로 만들어지기 이전인 5, 6년 전 어느 어르신께서 내게 한번 읽어보라고 주신 종이에는 분명히 “우리들의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육십부터”에 이어지는 글은 지금의 가사와 거의 같다. '인생은 육십부터'가 어느 틈엔가 어르신들 사이에서 저절로 '칠십부터'로 바뀐 것이다. 어르신들 스스로 장수 시대를 실감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가사를 바꿔 부르신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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