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동 아토피의 원인은 산모의 영양상태와 너무 이른 이유식에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나도 첫아이가 7년째 아토피 질환을 앓고 있는 터라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뉴스였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매체를 타고 나온 방송의 내용은 너무 실망적이었다. 최근 새집 증후군 등 심각한 환경오염이 각종 피부질환이나 알레르기의 원인이라다는 상식에 가까운 진리를 뒤집는 내용이었다. 나는 또 중얼거렸다.

“그래, 다 엄마들 잘못이지, 여자들이 임신해서 신중하게 먹지 않고 애기가 태어난 후에는 방정을 떨며 일찍 이유식을 시작해서 아토피라고?”

언제쯤 이 땅의 여성들은 이 사회의 손가락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라나? 막 출산한 아이에게서 이상 징후가 별견되면 의사는 질문한다.

“임신했을 때 혹시 흡연은? 맥주 한잔이라도 먹지 않았나요?”

임신했을 때 직장 동료들과 회식하며 맥주 딱 한 잔 마신 경험이 있는 여성은 평생 '경솔한 맥주 한 잔'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과연 임신한 여성에게 자동차 매연으로 가득한 종로와 명동거리를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 것과 맥주 한 잔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일까? 이 사회는 아이가 잘못되면 엄마를 비난하고 남편이 성공하지 못하면 부인의 내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리며 시집 식구 중에 불운이 닥치면 재수 없는 며느리 들어온 탓이라며 여성을 비난해 왔다. 그리고 결혼 안 하고 애도 안 낳겠다고 하면 '이기적인 여성'이라며 손가락질한다. 가부장제 사회가 유지되는 기제는 모든 여성들을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만들고 경쟁하게 만들어 자매애를 변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진짜 페미니스트는 상처받은 여성에게 “너의 탓이 아니야”라고 속삭이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다.

살다 보면 '여성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여성관련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 사기업의 여성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부터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렇다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무급 활동가들에게 페미니스트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여성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이유들을 사회와 남성들에게 1차적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진짜 페미니스트여야 성립 가능한 휴머니스트는 더 이상 여성들을 비난하지 않는 자다.

조주은 고려대학교 보건대학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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