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레시피’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남편들의 생활이야기입니다. 레시피라고 했지만 요리를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삶을 요리하는 레시피라는 뜻입니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 부부도 있구나”라며 필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 부엌으로 내몰리고 집에서 밥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기에 아무도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내가 지치지 않고, 물리지 않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고 청소 등 살림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요리가,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이 있어서다. ⓒshutterstock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 부엌으로 내몰리고 집에서 밥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기에 아무도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내가 지치지 않고, 물리지 않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고 청소 등 살림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요리가,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이 있어서다. ⓒshutterstock

아내가 출근하는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6시에서 7시 사이다. 아내는 그사이에 화장실 볼일을 보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아내도 나도 아침은 든든하게 챙겨 먹자는 주의라 아침은 나도 부지런히 손발을 놀려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는 멸치, 다시마 육수를 내어 청국장찌개를 끓였다. 한쪽에서는 달걀찜을 하고 텃밭에서 끊어온 깻잎을 데쳐 볶았다. 거기에 냉동굴비를 굽고, 김치, 장아찌 등 밑반찬과 함께 내놓았다. 보통 아침 밥상에는 7~9개 반찬이 밥과 함께 나간다.

아침은 청국장, 된장찌개, 황태국 등 주로 속이 편한 음식을 위주로 준비하지만 저녁에는 뭔가 그럴싸한 요리가 우선이다. 아내가 하루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후 뭔가 기분을 돋아줄 음식이 필요한지라, 오징어볶음소면, 감자탕, 닭찜 등 주로 매콤달콤한 요리들이다. 오늘 저녁엔 딸과 약속을 한지라 마라탕을 하기로 했다.

“신기해, 화장실 다녀오면 밥상이 뚝딱. 퇴근해 집에 오면 밥상이 뚝딱, 마치 내가 지니랑 사는 것 같아. 이렇게 매일 얻어먹고 살아도 되나 몰라. 미안하고 고마워요.”

벌써 20년 가까이 해 온 일이건만 아내는 아직도 이따금 이런 말을 한다. 몇 해 전, 번역가 후배가 “선배는 살림하는 게 지겹지 않아요? 난 10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하기 싫어 죽겠는데.” 난 그때도 그 후배와 내가 뭐가 다를까? 생각해보았다. 그 후배한테는 없고 나한테 있는 건 뭘까? 난 왜 20년 가까이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밥상 차리는 일이 왜 하나도 지겹지 않은 걸까?

그때 내 대답은 “가족이 행복해해서”였지만, 지금은 조금 마음이 바뀌었다. 그 후배라고 행복한 가족이 없을 리 없지 않는가. 요즘의 내 대답은 “아내가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서”다. 이를테면 일종의 남성 프리미엄이라는 뜻이다. 내가 아내였어도 아내는 내가 밥상을 내갈 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웠을까?” 아니, 아내가 내내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까닭은 여전히 살림은 여성의 몫이라고 의식/무의식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여성조차 “하기 싫어 죽겠는” 일을 남편이 대신해주니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겠는가.

누구에게도 당연한 의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있고 후배한테 없는 것은 미안하고 고마워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 부엌으로 내몰리고 집에서 밥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기에 아무도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내가 지치지 않고, 물리지 않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고 청소 등 살림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요리가,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이 있어서다. 밥상 너머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서다. 내가 기운을 잃지 않도록 늘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밥상을 차릴 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워해주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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