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미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호주제 폐지를 위해 민법을 개정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국회의원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넓은 홀을 가득 채우고 내 가슴마저 울린다.

옆 사람에게 '와 진짜 낭독하네'라는 농담을 건네는 것으로 슬쩍 지나갔지만 사실 정말 호주제가 폐지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막 설레였다. 그들은 호주제 폐지를 포함하여 모두 12항목이나 되는 중요사안에 대해 한 목소리로 공동 약속을 했다.

이거였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정치세력화 문제에 앞장선 사람들의 생각이 보이는 듯했다. 실현되는지 여부야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신선했다.

여성단체 순수성 의심하다니…

그런데 여성의원들과 함께한 그 자리에 모인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한 분들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다. 아무래도 이러저러한 평가 때문인 듯했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여성정치세력화운동의 성과나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격론을 벌여야 한다. 자신이 서 있는 지평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런 논의과정을 거쳐야만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비판은 모두 나름대로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관련 여성단체가 권력화했다라는 비판은 수용하기 어렵다. 그 표현을 듣는 순간 어느 재야의 어르신과 나눈 해묵은 대화가 떠올랐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주로 여성단체에서 여성할당제를 주장하고, 거기에 편승해 그 단체에 관여한 사람이 관직에 진출하거나 정계로 나가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때는 처음 인사하는 자리라서 매우 완곡하게 반론을 제기했지만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국회의원은 말 그대로 국민 일꾼

그런 주장은 국회의원이나 관직이 대단한 권력을 부리는 자리이고, 굉장한 이익이나 명예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 건 아닌가.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매우 힘들지만 그나마 조금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자리가 국회의원이나 관직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운동단체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올바른 시각과 일정한 능력을 배양한 사람들이 배제되어야만 도덕성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검증과정을 거쳐 필요한 자리에 배치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그들이 그런 자리에 가기 위해서만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지나친 피해의식의 발로다.

“여성의원 여러분 파이팅”

이번에 여성 후보를 추천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운동단체들 역시 그렇게 추천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가서 사심 없이 수많은 여성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주길 기원하는 마음이 전부일 것이다. 그런데 권력화라니 많이 억울한 심정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관계자 여러분 힘내시라 여기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많으니…. 우리 모두 국회의원이 좋은 일자리라는 편견을 버립시다. 수많은 국민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힘들고 어렵기만 한 자리입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