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 단어, 구체적 상황묘사까지
사건 초기 자성의 목소리 나왔지만 반복돼

22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한 단과대 건물 3층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 7월 22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한 단과대 건물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홍수형 기자

‘인하대 성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선정적인 언론보도를 두고 비판이 거세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피해 상황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난 16일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가해자가 촬영한 영상에 녹음된 피해자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울부짖는’ 등 자극적인 수식어를 사용했다("인하대 성폭행 추락사' 가해 남학생, 피해자 밀었다"). 같은 날 KBS 라디오 프로그램 ‘용감한 라이브’에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 휴대폰 속 음성 파일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는 식으로 호소하는”이라며 구체적으로 상황을 묘사했다. 그러자 이 교수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한 보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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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교수의 발언을 받아쓴 매체의 기사 검색 결과.ⓒ여성신문

자극적인 수식어와 구체적인 상황 묘사는 언론의 반복적 받아쓰기 보도 행태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뉴스검색·분석 사이트 빅카인즈에 따르면 ‘울부짖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매체는 총 10곳으로, 조선일보·헤럴드경제·문화일보 등이었다. 또한 이수정 교수가 라디오에서 한 발언을 그대로 기사화한 곳은 총 5곳으로 머니투데이·아시아경제·파이낸셜뉴스 등이었다. 

이는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모두 지키지 않은 것이다. 3항과 4항에서는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언론은 성범죄 사건의 이해와 상관없는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 그리고 수사과정에서의 현장 검증 등 수사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희 민주시민언론연합 미디어팀장은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 행태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언론계 내부 자성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개선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성별이나 피해 상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현장에 대해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짚었다. 언론인권센터의 윤여진 이사는 “언론이 ‘수사 상황을 보도하는 것은 괜찮다.’ ‘이것은 알 권리의 측면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전문가가 사건 수사결과를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인권적 관점에서 전달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보도 초기에도 언론은 불필요한 피해자 상태 묘사 등으로 논란이 됐다. 구체적인 범행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보도도 이어졌다. ‘여대생’이라는 차별적 표현을 사용한 사례도 빈번히 등장했다. 최초 보도 당시에는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가 수정한 경우도 있다. SBS와 경향신문이 대표적인 예시다. 한겨레의 경우 선정적인 표현을 쓴 제목을 수정한 사실을 스스로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2일 공개된 연합뉴스 수용자 권익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열린 회의에서 수용자 권익위원들도 A 통신사의 자극적 보도에 대해 질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용철 위원(SK 부사장)은 “발견 당시 A 통신사가 1보를 가장 먼저 썼는데 굳이 옷 벗은 채 발견됐다는 내용의 1보를 하다 보니까 모든 언론이 시신이 나체로 발견됐다는 것에 굉장히 포커스를 두면서 따라 쓰는 상황이 이어졌다. 사안 자체를 굉장히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민서 위원(서울대 학보사 취재 기자)은 “원인과 해결 방법 등을 제시하는 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기획 기사나, 혹은 이 사건을 직접 취재하고 따라갔던 취재 기자의 시각을 담은 취재수첩 성격의 기사가 제공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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