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의 반지하방 앞. 지난 11일 찾아가니 조화가 놓여 있었다.  ⓒ홍수형 기자
폭우로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의 반지하방 앞. 지난 8월 11일 찾아가니 조화가 놓여 있었다. ⓒ홍수형 기자

무척 시급해서 빠르게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생기고, 폭우로 반지하 셋방이 물에 잠겨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재난은 약한 이들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간 가난과 장애, 질병과 차별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던 이들이, 물이 차오른 반지하방에 의해 드러난다. 그때마다 세상은 들끓는다. 사회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가 무수히 언급되고, 성금이 모이고, 미디어의 관심이 폭발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이지만, 여전히 또다시 문제는 반복된다.

생명을 살리는 일, 그리고 모든 이들이 세상 속에서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고 또 엄숙하다. AI 분야 연구자로 밥벌이를 하다보면, 기술의 성능을 높여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더 잘 쓰게 하려는 일이 가끔 상대적으로 한가한 고민에 그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수해로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돕는 것이 당장 급하지, AI 이미지 인식기가 편향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건 어쩐지 속 편한 지적 같아 보여서다. 크나큰 재난을 겪고 나면, 그래서 내가 하는 학문과 연구, 일이 지닌 의미를 자꾸만 되짚게 된다.

인류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 해결해가는 AI

그러나 다행히도 AI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얼마 뒤, 일부 기술 저널에서는 기술이 사람 목숨을 지키는 데 별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코로나19 전염병의 진단과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AI는 꽤 강력한 기여를 했다¹. 이미지 분석 기술을 활용해 폐 CT 사진을 바탕으로 극초기 감염 상태에서도 질병 여부를 탐지해 낼 수 있었고, 시판된 약물 중 코로나19에 대해 약효가 있을 법한 것을 찾아냈다. 질병·백신의 부작용 확인과 가짜 뉴스 판별, 아이들의 학력 저하 문제 해결, 격리로 인한 우울증 문제 파악 등 코로나19를 중심으로 발생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 AI가 쓰였다.

나아가 기후 위기 측면에서도 AI 활용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², AI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 감축, 제거하는 각각의 단계에서 특히 탁월하게 활용돼 탄소 배출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적응력이나 회복력에도 기여할 수 있다. 가령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 변화를 고려한 주거 시스템 구축을 해낼 수도 있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펀더멘털 차원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질 사회경제학적 구조 변화를 모델링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자원 배분 문제나 기회의 제공 같은, 누군가에게는 당장 정말 치명적이고 중요한 일에도 AI는 쓰이고 있다. 가난 해결과 불평등 감소를 비롯한 UN의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각각을 달성하는 일에 AI를 도입해 활용하는 프로젝트들도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다³ ⁴. 기술은 배불리 먹고 사는 이들의 좀 더 편한 삶만을 챙기고 있진 않다. 곳곳에서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차근차근 풀고 있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만드는 이들

이 모든 쓰임새는 결국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 무엇이 정말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를 정의하고, 그 해결 방법으로 탁월한 기술을 찾아 다루는 건 사람의 몫이니 말이다. 임팩트 투자사는 피투자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파급력을 볼 때, 그들이 만든 솔루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거나 그들에게 벌이의 기회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솔루션이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묻는다. 그만큼 솔루션을 만드는 이들이 문제 해결의 의지와 사태의 엄중함을 정확하게 꿰고 있는지가 무척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할 일을 뾰족하게 정의하고, 기술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통찰력 있게 꿰뚫고, 솔루션을 재빠르게 기획할 수 있는 인재들을 찾고 있다. 기자로 일할 때, 세월호 참사 당시 아이들의 휴대전화 속 마지막 순간이 담긴 영상들을 돌려보면서 무척 크게, 오래 후회했다. 아이들은 끝까지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니 그 손바닥만 한 화면마다 ‘당장 빠져나오라’는 메시지를 누군가 띄웠다면, 그래도 몇 명은 더 살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두의 상상력이, 통찰력이 부족했다.

기계는 갈수록 사람에 체화된다. 그만큼 사람들이 팔에 차고 귀에 끼는 모든 기계들을 활용해 생명을 구할 기회도, 오롯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 방법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AI가 잘 해낼 수 있는 범위를 또렷하게 아는, 그러면서도 인간과 환경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엄숙하게 역할을 해낼 인재들을 절실하게 찾고 있다.

 

[참고문헌]

¹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2021. 8. 19.), How artificial intelligence could help the fight against COVID-19 
https://www.gavi.org/vaccineswork/how-artificial-intelligence-could-help-fight-against-covid-19?gclid=Cj0KCQjwxveXBhDDARIsAI0Q0x3jr0Ffkl0iWNNIDAxmJOUyteg_Xa8F1XUnYflChjzSaDoMGspkRoUaApTAEALw_wcB

² Boston Consulting Group(2022. 7. 7.), AI Is Essential for Solving the Climate Crisis
bcg.com/publications/2022/how-ai-can-help-climate-change

³ The Future Society in Special Projects, The AI Initiative(2019. 5. 28.), AI for SDGs Center (AI4SDG)
https://thefuturesociety.org/2019/05/28/ai-for-sdgs-center-ai4sdg/

https://aiforgood.itu.int/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