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결혼 안 해도 아이 갖고 싶어하던 친구

30년 전 도덕적 잣대 들이대던 내 모습 후회

친구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 왔다. 나는 왜 아직도 결혼식 날을 잡지 않느냐며 다그쳤다. 그럴 사정이 있노라고 핑계를 대오던 친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남자가 실은 애가 셋 딸린 유부남이라고. 뭐라고? 이게 웬 연속극? 고등학교 때부터 각별한 친구였다. 친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는 단짝이 있는가 하면 가끔씩 봐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속 깊은 친구도 있다. 속 빈 깡통마냥 눈곱만큼 주워 들은 걸 갖고 동네방네 떠벌이던 나와는 천지 차이로 그 친구는 말없이 책을 파대던 독서광이었다. 나는 그애가 보통 여자애 같지 않고 철학자 같아 좋았다.

대학 다닐 때는 왕래가 없었다. 학교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전화도 아주 드문 때였다. 아마 그때쯤에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내가 다니던 직장의 다른 부서에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되면서 우린 다시 만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집을 나와 따로 살고 있었다. 일과 연애로 바쁜 나는 그녀와 함께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친구와 다시 가까워진 건 내가 전업주부로 변신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직장을 여러 군데 거쳐 드디어는 자그마한 옷가게를 냈다. (여성취업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울 때였다.) 마침 우리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신촌이었기에 이웃집에 아이들을 잠깐 맡겨놓고는 옷도 살 겸 친구를 만나러 가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멀리 (이른바 강남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을 때 그녀도 옷가게를 그만두고 조그만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 회사의 젊은 사장과의 연애도 시작되었다.

요즘에야 유부남인 걸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여자들이 많다지만 당시만 해도(무려 30년 전이다!) 총각인 줄 알고 시작된 관계였다. 나도 한 번 봤지만 누구나 속아 넘어갈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남자는 전형적인 각본대로 움직였다. 아내와는 사랑 없는 관계이니 곧 정리하고 너와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고통의 시간은 꽤 길었다.

사실을 알면서도 왜 아이를 지우지 않았느냐는, 나의 힐난 섞인 질문에 돌아온 친구의 답변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남자와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난 후에 자발적으로 아이를 가진 것이라고 했다.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었고 얼마든지 혼자 키울 자신이 있다고 친구는 나직하나 힘있게 말했다.

친구는 내가 당연히 자신을 이해해 주리라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속은 마구 벌렁거렸다. 이 미친 X, 나쁜 X 같으니라구! 물론 욕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친구의 아이가 돌이 지날 때까지 나는 친구의 도리로서 그를 이해하려고 무진 노력했다. 그러나 죽은 시인 고정희의 말대로 당시 나는 영락없는 정경부인이었다. 친구의 입장보다 상대남의 부인이 자꾸 떠올랐다. 무언가 옳지 않은 편을 드는 것 같아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친구를 만나기가 꺼려졌다.

앞으로의 활로를 찾기 위해 친구가 외국에 나갔다 온 잠깐의 공백기를 계기로 나는 만남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친구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우정은 끝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를 정말 좋아했다면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존중했어야 했다. 지가 무슨 정경부인이라고 친구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내쳤단 말인가. 아니 내가 내친 게 아니라 친구가 나를 내치도록 몰아간 거다. 나쁜 여자는 친구가 아니라 나였으니까. 아니, 나쁜 여자 축에나 드나, 못난 여자지.

속 깊은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지금은 서른이 다됐을 그 아이도. 틀림없이 멋지게 컸을 거야.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