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들은 분주하다. 성명서, 홍보물 등 사료들을 홈페이지에 탑재해서 여성노동 현실과 운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대졸 여성노동자의 삶을 살아오다 40대에 여성노동자회 상근활동을 시작한 신상아회장은 “기록이 유산이 되어야 한다”며 고이 쌓아둔 사료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전직 활동가들도 팔 걷어붙이고 8, 90년대 자료를 하나씩 확인해가면서 사료분류와 스캔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여성노동자회 창립 주체들은 경제성장의 주역이기도 한 70년대 민주노조운동 지도자와 학생운동· 노동현장활동·여성평우회활동을 통해 성장한 여성운동가다. 그들은 독자적인 여성노동단체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 한국 사회 민주화실현과 노동해방, 여성해방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통일적으로 결합돼야 한다는 관점으로 실천해나갔다. 여성노동자가 삶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는 보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볼 수 있기에 여성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여성노동현실을 목청껏 외치고, 여성노동자 주체의 세력화를 위해 노력한 지 35년이 되었다.

여성의 노동으로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기에, 여성노동자 개개인의 권리찾기부터 세상의 변화까지 이루어내야 했다. 1987년 창립 이래 고용평등, 비정규직과 고용안정, 저임금과 차별임금, 모성보호와 모·부성권, 일·가정양립(일·생활균형), 직장 내 성희롱, 직업교육·훈련, 여성실업과 근로빈곤, 돌봄노동과 사회적 일자리 등을 폭넓게 제기해왔다. 상담과 교육현장으로, 투쟁현장으로, 거리로, 국회로, 정당으로 뛰어다녔다.

취업 - 결혼·임신·출산 퇴직 – 실업·반실업 - 재취업 주기를 반복하는 구로지역 여성들과 함께하며, 1989년 놀이방을 운영하고 정류장 수만큼 탁아소를 만들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1992년 미싱교실, 컴퓨터교실 운영과 직업상담을 진행하면서 여성직업교육・훈련사업을 개척했고, 1998년 대량실업시기에는 발 빠르게 여성실업대책본부를 만들어 실직여성을 지원했다. 여성노동현실은 정말로 적극적 실천 없이는 작은 것 하나도 확보할 수 없었고 온전히 누릴 수도 없었다. 35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취업 여성노동자, 고용불안정 상태의 여성노동자, 비공식부문 여성노동자, 실직 여성과 근로빈곤계층 여성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소통하며 세력화에 기여한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들의 권리 확보와 삶의 변화, 사회 변화를 위해 실천하면서 활동가들도 성장했다. 대안 사회를 꿈꾸며 ‘전업운동가’라는 대안적 직업을 선택한 활동가들은 공동체와 자매애를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출산과 더불어 서울여노 주변으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은 놀이방과 공부방에 다녔다. 활동가들은 아이들 옷이며 쓰던 물건 서로 나눠 쓰면서 일도, 육아도, 문화생활도 함께했다.

늘 일은 차고 넘쳤기에 많은 활동가들은 소진되기도 했다. 만 15년 활동을 하니 나도 그리 되었다. 심신이 완전히 소진되는 상황까지 가야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내가 치유의 시간을 갖고 요가선생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은 여성운동판에서 화젯거리가 되었다. 나는 요가・명상안내자로 여성운동 서포터로, 활동가들이 자기돌봄과 성찰을 통해 건강하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성노동자회 교육활동가들이 만든 (사)일하는여성아카데미와 함께 여성활동가를 위한 자기돌봄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시해서, 전현직활동가 50여 명이 모여 자기돌봄 정보를 나누며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 명상모임도 2년간 진행되고 있어서 이 자조모임에 언제든 참여해서 자신을 돌보며 재충전하고 있다. 학생운동, 노동현장활동을 거쳐 20대에 서울여노 상근활동을 시작한 현 이사장 손영주도 활동 16년 만에 소진돼서 치유의 여정을 떠났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회복되어 상근활동가로 복귀했고 서울여노 회장으로 6년간 수고했다. 우리는 일도 명상도 함께하면서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면서 함께 늙어가고 있다.

서울여노 35년은 여성노동자들과 활동가, 회원뿐 아니라, 전문성으로, 재능으로, 물품으로, 활동으로 후원한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역사이기도 하다. 『서울여성노동자회 30+3 성평등걸음』 도 여성노동전문가(김경희, 김둘순, 김양지영, 이세민)가 자원봉사로 수고한 덕분에 역사적 기록물로 완성되었다. <십시일반 서울여노 활동사 아카이빙> 모금도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시대정신과 함께하면서 공감과 소통의 역사를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왕인순 서울여성노동자회 이사 ⓒ홍수형 기자
왕인순 서울여성노동자회 이사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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