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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 원장·정치학 박사

며칠 전 자치단체장이 지역현안을 논의하고자 해당 지역과 관련 있는 국회의원 당선자 5명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는 비례대표 당선자 1명만 참석했을 뿐, 3명은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불참했고, 나머지 1명은 '지역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전국을 상대로 한 비례대표 당선자가 참석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상식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불참, 회의는 결국 무산되었다. 지역현안을 논의하고자 했던 당초의 의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역대표와 비례대표 사이의 자격시비와 차별논쟁으로 끝이 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만 불편하게 만들어놓았다.

무엇이 그렇게 편을 가르게 만들고 너와 나 사이의 장막을 치게 만드는 것일까? 쓰라린 과거의 상처를 치유는 고사하고 계속해서 후벼 파는 우리의 자학증(自虐症)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비례대표 의원직이 직능대표 성격의 전문성보다는 공천자금 등 정당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 것도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이와 같은 어두운 과거에 발목이 잡혀 우리의 비전을 흐리게 하고 오늘 할 일과 사명을 유기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의 대표들 상당수가 사법, 검찰, 변호사 등 법조계와 행정공무원 그리고 정당인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헌법을 고치고 1인2표제의 실시가 고질적인 지역정치의 병폐를 치료하고 다양한 계층의 고른 시선으로 일하는 국회로 만들어야 할 시점에서 비례대표직의 중요성을 역설해야 할 터인데.

유능한 지도자는 '훌륭한 일과 업무를 새로이 생각해 내는 사람'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모두가 비례대표 의원직의 의미와 중요성을 재고해야 할 것이고, 일을 할 때 상대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상대가 아닌 나에게 돌려 우선 나부터 점검하는 겸손함을 구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유일하게 회의에 참석한 문제의 비례대표 당선자가 여성이기에 마음은 더욱 착잡하다. 16대 국회까지 94%의 남성과 6%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의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고, 이것이 곧 우리의 민주정치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한계임을 강변하며, 단지 몇몇을 위한 결정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그래서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여성정치 참여론의 힘을 받아 어렵사리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지역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 온 여성당선자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역과 비례의 편가르기가 차별이 아닌 단지 상식이라고 항변하지만 그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일까? 혹시 오랜 세월 남성으로 누려온 특권의식과 이제 국회의원으로서 갖고 싶은 특권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나의 특수성과 차이성만을 고집하기보다는 그것을 상대화하면서 타인의 차이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차이는 우열과 불평등이 아닌, 다양성과 경쟁력으로 되살아난다. 차이를 차별이 아닌 다양성으로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감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쁘고 언짢아 지는 저급한 수준의 배타주의가 민주주의를 좀먹는 치명적인 해악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29명의 여성의원이 비례대표로 선출되었고 17대 의정활동에 대한 각오도 남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되던 문제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며,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우리 눈앞에 드러날 것이다. 정치의제에서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모두의 바람대로 갈등과 차별이 아닌, 나름의 공간과 생활에 대한 상호인정이 갈등의 절약을 가져오리라는 생각에 귀기울였으면 한다. 이제 낡은 권위구조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해 간다. 대화, 역할의 실질적 교환, 경청 그리고 서로에 대한 책임 등 지금까지 낯선 것들에 손을 내밀 때가 되었다. 생각을 다시 고쳐먹자. 생각이 곧 말이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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