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감현주 기자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이라크파병 원점 재검토를 위한 17대 여성국회의원 당선자와 여성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렸다.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3당 국회의원 당선자 15명과 51개 여성단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명이 참석해 '여성의 힘'을 보여줬다. 당을 초월해 의기투합하는 정치인의 모습이나 정치인과 시민단체, 전쟁피해 당사자가 하나의 몸짓으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도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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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발언권을 놓친 정대협 할머니들이 참석자들을 향해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그러나 이 날 기자회견은 새롭게 시작하는 여성국회의원에게 소신을 밝히는 자리였지만, 전쟁의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겐 구태정치인들의 정견회장으로 비춰졌을지 모를 일이다. 참석한 여성당선자 8명 전원 발언 이후 예정된 정대협 할머니 2명의 발언이 시간에 밀려 생략될 뻔한 해프닝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판의 기자회견 공식에 따른다면 여성당선자는 '꽃', 할머니들은 '일회용 소품'구도인 셈이다.

'이라크 파병 원점 재검토'는 기존 당론을 거슬러야하는 여성국회의원들에게는 더욱 소신을 빛나게 하는 주제인 것도 사실이다. 유승희 의원은 “6월 이라크 주권이양 시기에 맞춰 이라크 파병 재검토를 위한 국회 TF팀 구성”을 제안했고, 장향숙 의원은 “모든 전쟁은 장애와 병을 발생하고, 내 몸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여성당선자 8인의 발언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일부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예정된 정대협 할머니들의 발언 순서가 미뤄지기에 이르렀다.

순간 할머니들은 그 자리가 기자회견장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섭섭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김윤심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들은 국회의원들, 청년들에게 섭섭해. 왜놈들한테 당하고 여기 또 불러놓고 마음 상해야 되냐구”라며 책상을 때리고 큰 소리도 질러댔다.

김 할머니가 잠시나마 드러낸 불편한 기색에는 거짓 없는 '민의'가 들어있다. 믿었던 식구들인데도 이제 '국회의원'이 되면 가장 억울하고 피해 입은 당신들보다 먼저가 되고, 예전처럼 당신들은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한 당신들이 정치인들이 마련한 잔치에 맞춰진 소품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후 김 할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제대로 발언 기회를 얻었다.

“방송에서 미국인이 이라크인들 알몸으로 고문하는 걸 봤는데 14살 때 일본군에게 당한 일이 생각나 며칠동안 잠도 못 잤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해결 안 된 상황에서 또 다시 젊은이들을 사지로 보낼 수는 없어요.”

잠깐 동안의 해프닝이었지만 이 날 참석한 여성국회의원들에겐 큰 호통으로 남았을 것이다. 여성, 특히 소외된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내 위에 있는 정치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여성정치인이다. 국회 개원에 즈음해 생긴 이번 해프닝으로 진정성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여성국회의원에게는 다시금 각성의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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