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차별 잔혹사는 끝났을까? ... 60~70년대 '여행원' 투쟁기
금융권 성차별 잔혹사는 끝났을까? ... 60~70년대 '여행원' 투쟁기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2.08.01 10:29
  • 수정 2022-08-04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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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
결혼각서제·여행원 제도 등
금융계 성차별에 도전했던 장도송·이한순 씨 구술 기록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장도송, 이한순 구술/민경자 씀/이정자 기획/나녹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장도송, 이한순 구술/민경자 저술/이정자 기획/나녹

결혼각서제 폐지·여행원 제도 폐지 등 금융계 성차별을 극복해온 여성운동사가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라는 제목을 달고 책으로 나왔다. 

지난 7월 2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주최로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도서출판 나녹에서 출간된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는 장도송(86) 전 조흥은행 연수원장과 이한순(76) 전 조흥은행 지점장·현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고문이 구술하고 민경자 충북여성인권 이사장이 썼다. 기획에 이정자 여해여성포럼대표가 참여했다.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는 금융계 내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20여년 간 싸웠던 여성 은행원들의 여성운동을 돌이켜보는 책이다. 1960~70년대 은행의 성차별 현실을 조명하고, 결혼각서제 폐지와 ‘여행원 제도’ 폐지를 중심으로 은행원 여성운동을 살펴보고 있다. 과거 은행계에서는 여성들이 결혼할 경우 퇴직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입사하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깨기 위해 이명숙, 노미숙을 비롯한 여성 은행원들이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도전을 해야 했다. 지금은 당연한 상식이지만 이 당연한 상식조차도 여성들의 피나는 투쟁의 성과였다는 역사적 교훈이 담긴 책이다. 

28일 열린 '평등으로 가는 여정' 출판 기념회에서 이한순 고문이 발언하고 있다.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7월 28일 열린 '평등으로 가는 여정' 출판 기념회에서 이한순 고문이 발언하고 있다.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1976년 시작된 ‘여행원제’는 일터에서의 성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여행원제는 급여를 직군별 단일 호봉제로 제도화하면서, 행원과 고용원으로 구분돼있던 보수체계를 일반행원, 여행원, 고용원으로 분리한 것이다. 일반행원은 일반직 남성을, 여행원은 여성, 고용원은 일용직 및 기술직 등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다른 임금 체계를 갖게 된다. 같은 대학 졸업자가 입사해도 남자는 일반행원의 체계를, 여자는 여행원의 체계를 따른 급여를 받고, 여행원 직군에서 일반행원 직군이 되기 위해서는 '전직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여성 은행원들은 ‘일반행원이 되려면 성전환을 하고 오라’는 말을 실제로 들으면서 변화를 위한 투쟁을 해나갔다. 1991년 노동부의 취업규칙 발표로 이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여성들은 실직 명단에 올랐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선적으로  '희망퇴직'을 강요받으며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하늘의 별따기 같은 취업 시험에 합격해도 '결혼각서'라는 모욕적인 각서를 제출하고 입사를 할 수 있었고, 재직기간에는 '여행원' 직군으로 이등 직원의 신분으로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신분이동'을 위해선 특별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반면 경제 위기가 닥치면 여성들은 구조조정의 우선대상자가 되어 퇴직해야 했다. 결혼퇴직과 여행원, 희망퇴직으로 연결된 견고한 성차별의 벽을 허물어뜨린 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한 방'이 아니었다. 신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한 '한 방울'들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도송 전 조흥은행 연수원장은 “한 방울의 물이 똑똑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낸다”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기울인 노력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성공을 돕는다”고 말했다.

이 책을 구술한 장도송 전 조흥은행 연수원장과 이한순 전 조흥흔행 지점장·현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고문은 결혼각서제폐지와 여행원제 폐지를 이끌었던 인물들이다. 장도송 전 연수원장은 시험을 통해 승진한 금융권 첫 여성 대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여성 최초 예금취급소 점포장, 여성 최초 은행지점장, 여성 최초 본부 부서장 등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와 늘 함께 했다. 이한순 고문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조흥은행에 입행해 조흥은행 노동조합 여성부장 등을 맡아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지점장 근무 중 명예퇴직했다.

28일 열린 '평등으로 가는 여정' 출판 기념회에서 장도송 전 연수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7월 28일 열린 '평등으로 가는 여정' 출판 기념회에서 장도송 전 연수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이번 출판기념회에는 △장도송 전 조흥은행 연수원장 △이한순 전 조흥은행 지점장·현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고문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장명선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지영선 전 환경운동연합 대표·전 동아일보 기자 등이 참석했다.

2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주최로 『평등으로 가는 여정』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성신문
7월 2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주최로 『평등으로 가는 여정』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성신문

장도송 전 연수원장은 “수십년 간 은행원으로서 직장에서 평소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로 담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 인권운동사는 관련이 있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돌봄으로 한층 더 다져져 여성 운동의 발전으로 나아갈 것”이라 말했다.이한순 고문은 “이 책은 후배들, 특히 노동조합을 하는 후배들한테 주고 싶었던 책”이라며 “과거의 것을 참조하면 더 지혜롭지 않을까, 더 힘을 얻고, 덜 외롭지 않을까라는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축사에서 “지금은 결혼각서 같은 건 쓰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결혼, 출산 때문에 경력단절을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며 “이 책은 금융노조만의 여성운동이 아니고 전체 여성의 운동사다. 또한 우리 사회를 앞으로 어떻게 잘 만들어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진다”고 말했다. 결혼퇴직 각서 같은 원시적인 성차별은 이제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경력단절과 독박육아, 성추행의 악습은 여전하다. 이 책에 담긴 뜨거운 여성운동사는 현재에 다시 묻는다. 일터의 성차별 잔혹사를 끝내기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2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주최로 『평등으로 가는 여정』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성신문
7월 2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조흥은행 여성동우회 주최로 『평등으로 가는 여정』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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