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폐지 로드맵’ 주문한 대통령
정부조직법 개정 없이 불가능
“이탈 이대남 껴안기 용”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7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7월 25일 여성가족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신속하게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윤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 카드를 내민 배경에는 추락하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대남(20대 남성)’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강인선 대통령 대변인은 이날 윤 대통령이 김현숙 여가부 장관으로부터 여가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한부모가족, 위기청소년 등 취약계층 지원 확대 △1인 가구, 노인가구 증가 등 가족형태 변화 적극 대처 △성희롱, 성폭력 등 피해자 보호 대책 강구 △조속한 여가부 폐지 로드맵 마련 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초 업무보고 내용에 여가부 폐지에 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김 장관도 이날 오전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업무보고는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폐지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타임라인을 정해놓고 있지 않다’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추진하겠다는 게 김 장관의 입장이었다. 현재 여가부는 부처 폐지·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전략추진단을 구성해 지난달부터 운영 중이다. 김 장관은 업무보고 뒤 기자들에게 “정부조직법은 여가부 얘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타 부처, 특히 행정안전부로 모여서 여러 부처가 의견을 내야 되는 것”이라며 “저는 시간을 좀 많이 갖고 하려고 했는데 대통령께서 조속히 빠른 시간 내에 안을 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 중 하나다.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으로 당시 일부 2030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해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 냈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부처의 역사적 소명이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가부 폐지 공약을 재차 확인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을 새 정부 출범 이후로 연기하면서 5월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부처 폐지에 대한 반대가 거센데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가부 폐지안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임기 초반 소모적인 논쟁을 우려해 보류했던 사안을 윤 대통령이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 지시대로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신속하게 마련하더라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여가부 폐지를 담는 정부조직법은 행정안전부 소관이고 국회 입법 사항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를 고리로 하락세인 청년층 지지율 회복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국정 실정에 대한 국민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치기 정치의 전면에 나선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연이은 인사 참사와 사적 채용 논란, 권력기관 장악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갈라치기 정치로 상쇄하려는 것이라면 오산”이라며 “국제적인 비교에서 대한민국은 절대적 수준에서는 양호한 여성 인권 수준을 보이지만, 경제활동 참여율 등에서 남녀의 상대적 격차는 여전히 상당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도그마에서 빠져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영 정의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또다시 갈라치기 정치를 시작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여가부 폐지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하고, 현재 여소야대 국회에서 통과가 어렵다는 걸 뻔히 알면서 장관에 지시를 내린 저의가 궁금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혹여라도 떠나간 20대 청년 지지율 때문이라면 번지수가 틀렸다”며 “성평등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존폐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 폐지 방침을 철회하고, 성평등 가치를 제대로 정립할 수 있는 부처로 위상을 바로 잡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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