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EO가 간다] 가발을 '헤어웨어'로 만든 선구자 김영휴 씨크릿우먼 대표
[여성CEO가 간다] 가발을 '헤어웨어'로 만든 선구자 김영휴 씨크릿우먼 대표
  • 이의준 SG전략연구원장·경영학박사
  • 승인 2022.07.28 10:34
  • 수정 2022-07-29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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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CEO가 간다] 김영휴 (주)씨크릿우먼 대표
“남 탓 하지 말고 나를 키우세요”
자의식 강한 소녀, 벤처사업가로 우뚝
가발에 패션 개념 더해 ‘헤어 웨어’ 개척
‘여자사장수업’ 8기생 배출,
후배 여성기업가에 노하우 전수
김영휴 (주)씨크릿우먼 대표

똘똘한 호남의 소녀는 딸은 학교 안보내고 허드렛일이나 시키던 환경 속에서도 조선대 철학과를 입학했고. 전업주부 시절에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수학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늘 ‘나다운 삶’을 갈구하면서 경제적 독립을 갈구하던 그는 가발을 패션 아이템으로 해석하며 ‘헤어 웨어’ 회사를 창업했다.

척박한 중소기업 환경 속에서 자수성가형 여성 기업가의 길은 험난했지만 특유의 긍정성, 자신감, 탐구심으로 20년 만에 7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독보적인 패션가발 회사로 우뚝 섰다.

늘 근본을 공부하고, 자신을 알고자 하며, 미래전략을 설계하는 학구파 CEO 김영휴 사장은 카이스트 미래전략 석사학위를 마쳤다. 교육에 남다른 열정으로 직접 만든 교재로 후배 여성을 위한 '여사장 수업'과 직원교육을 실시했다.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씨크릿우먼 본사에서 김영휴 대표를 만났다.

차별에 대한 분노가 발전의 원동력

김영휴 사장이 성장하던 시절은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딸은 아무리 사랑스럽고 똑똑해도 크게 될 인물로 기대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들은 공부시키고, 딸은 그 아들을 뒷바라지 하고 집안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어린 소녀 김영휴는 딸로 인한 차별을 겪으면서도 늘 “나는 왜?”라는 질문을 품었다. 소녀의 강한 자의식은 현실에 분노하는 만큼 더 배우고 성공하려는 열망이 되었다. 딸이라면 의레 중학교 졸업하고 마산이나 구미의 전자업체에 취직하는 게 보편적이었지만 그는 “두고 봐라. 내 길은 내가 만들어 간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했다.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과 대학원공부를 마쳤다. 이러한 경험은 “환경을 탓하기 보다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인생 소신으로 자리잡게 됐다.

“나다움을 발견하고자 했죠”

그에게 삶이란 곧 ‘나다움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조선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서도 늘 ‘나다운 게 뭔가?’를 찾고자 했고, 나다운 방식을 찾는 것이 자기주도적 삶이라는 걸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나다움을 구현하는 방법론은 경제적 자립이라고 생각했단다. “ 내가 생활고를 걱정하고 타인에게 경제적 의존을 하면서 나답게 살수는 없는 것이었죠. 12년의 과외선생 생활로는 돈은 벌 수 있지만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도 없고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김영휴 (주)씨크릿우먼 대표
김영휴 (주)씨크릿우먼 대표

창의력과 도전정신의 발휘 “창업만이 답이었다”

절실하면 보인다고 했던가 창업 아이템을 찾던 그에게 ‘패션 가발’종목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 뽕 머리가 유행했는데 여성들이 머리 숯이 없어 뽕 머리를 올리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걸 사업으로 연계하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남성들의 가발은 대머리의 대안이지만 여성에게는 미용이자 패션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소득수준 3만 불이 넘으니 무조건 싼 것보다는 가치만족을 주면 잘될 거라 생각했지요. 자기를 표현하는 아이템으로 옷이나 장신구의 역할을 하는 가발이면 좋겠다. 생각을 한 거지요.” 여성들이 헤어스타일을 위해 펌, 염색, 커트 등을 하는데 이를 ‘헤어 웨어’로 간편히 해결하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창업이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정부지원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심지어 가발이 마치 60~70년 대 후진적인 노동집약산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도 부딪혔다. 창업경진대회에서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도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기술력과 소비자만족에 있었다. 제조현장에 들러보니 가발의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었다. 모든 가발이 오직 한사람을 위해 수많은 공정과 가공을 거친다. 오직 소비자와 1:1맞춤이 생명인 제품인 것이다. 오늘날 씨크릿 우먼의 기술력은 세계 30여 개국에 실용실안과 국내외 특허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제품

김대표는 여성의 강점을 충분히 발휘한 사업가다. 바로 패션가발이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시장의 니즈를 알고 언제든지 고객집단과 대화로 수시 모니터링을 한다. 직접 제품을 사용한다는 점도 강점이다. “여성의 강점을 살려야합니다. 꼼꼼하고 미적 감각도 있고 사람관계도 부드러운 점을 활용해야지요.”라고 했다. (주)씨크릿우먼은 현재 80여명의 가족을 거느리며 연 매출 100억 원을 목표로 지속성장하고 있다. 전국의 유명백화점을 비롯해 24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역할에도 적극적이다. 김 대표는 충청권지역의 여성벤처협회장을 무려 7년간이나 했다. 저서도 많다. <스타일을 파는 여자>를 출간한 이래 최근 까지도 <여자를 위한 사장수업> <세계 헤어 웨어 이야기> 등의 저서를 남겼다. 후배를 위한 지침서이기도 한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씨크릿우먼 사옥.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씨크릿우먼 사옥.

동반성장의 강조, “나 혼자 잘사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

특히 <여자를 위한 사장수업>을 바탕으로 국내외 여성창업가에게 경영과 개인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여사수’라고 이름 붙인 이 과정은 4년차에 접어들었는데 그간 8기 150여명의 수료생도 배출했다. 격주단위의 줌 강의에는 20여명의 국내외 여성사업가들이 참여한다. 저녁 7시에서 열시 반까지 총 4회에 걸쳐 진행된다. 김대표가 강의장, 강사, 교재 등 일체의 비용을 제공한다. 선배 여성기업인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단다.

문화콘텐츠 전문기업을 꿈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최근 식품과 엑세서리 등 다각화를 하고 있습니다. 큰 계획도 세우고 있지요.”라고 슬쩍 말해준다. 사람의 심리와 행태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개인이 되새기고 싶은 추억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싶단다. 첨단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형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전지적 전략시점>

□ 경영자에게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 인터뷰였다. 이윤추구가 기업의 본질이지만 근저에는 철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그저 매출과 이익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 동반성장하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CEO의 힘은 무한 긍정성에서 나온다. 김영휴 대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남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내 문제 내방식으로 내가 해결한다’는 굳은 소신이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자신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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