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반페미니즘 정서 팽배
학내 여성주의 단체, 악성댓글·루머 유포 등 백래시 겪어
성희롱·성추행 사례도 빈번
20대 성별 간 성인지감수성 격차 극복해야

대학 내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확산되고 있다. 여성 대상 성희롱·성추행 사례도 빈번해 캠퍼스가 여성에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 6일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녹지는 가판대에 『녹지』를 배부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놓여있던 『녹지』에 압정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압정의 날카로운 쪽이 위로 올라와 있어, 『녹지』를 가져가는 이들을 상처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추측됐다. 이들이 이런 일을 겪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는 40여 권의 『녹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됐고, 올해는 녹지의 수습 위원 모집 포스터가 사라졌다. 녹지 관계자는 “대학생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내에서 구성원들이 횡령을 했다는 루머가 유포돼 이가 기정사실화됐고, 일방적인 비난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7월 6일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녹지는 가판대에 『녹지』를 배부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놓여있던 『녹지』에 압정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사진=녹지 공식 트위터)
7월 6일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녹지는 가판대에 『녹지』를 배부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놓여있던 『녹지』에 압정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사진=녹지 공식 트위터)

페미니즘과 연계된 대학 내 단체가 백래시로 인해 위협받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전남대학교 여성주의 동아리 팩트(F;ACT)는 에브리타임에 동아리 홍보 글을 올렸다가 신고를 당해 삭제되는 일을 겪었다. 글이 겨우 살아남았을 때는 모욕적인 악성댓글이 달렸다. 팩트에서 활동 중인 말리(활동명)씨는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을 때 관련된 내용으로 대자보를 붙였지만 하루 만에 대자보가 사라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대학 내 반페미니즘 정서를 겪은 이들은 대학 내 공론장의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말리씨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산되면서 에브리타임의 영향력이 커졌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녹지 관계자는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끼며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여성주의 배제는 차별을 외면하는 것임과 동시에 차별에 익숙해지는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학내에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한 단과대 건물 3층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홍수형 기자
7월 22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한 단과대 건물 3층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홍수형 기자

대학 내 성희롱·성추행도 심각
성인지 감수성 격차에서 비롯돼

성희롱, 성추행 등 대학 내 ‘강간 문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발생한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3층에서 추락시켜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A씨는 범행 당시 불법촬영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SNS상에서 과거 대학내에서 겪은 성희롱·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신입생 시절 엠티를 다녀왔다는 A씨는 “술을 많이 마신 남자 선배가 나와 동기를 끌어안고 누웠다”며 “허벅지에 음료를 흘렸을 때도 불쑥 다가와 닦아주려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학내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외모 순위를 매기고 품평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는 20대 남성과 여성의 성인지 감수성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성폭력예방교육을 수강한 공공기관 종사자 2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것은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에 동의한 20대 남성이 30%로 조사됐다. 20대 여성의 경우에는 10.3%였다. ‘상대의 성적 사진·동영상을 동의 없이 찍거나 촬영하는 것은 범죄다’에 아니라고 답변한 20대 남성은 8.5%로, 20대 여성(1.1%)의 약 8배가 넘는 수치였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0일 입장문을 내고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문화, 아무렇지 않게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 성적 ‘농담’과 ‘가벼운’ 추행은 별일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 불법 촬영과 성폭력이 일상화되고, 누군가의 피해를 조롱하고, 외면해온 현실을 대학 공동체는 직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