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캐릭터...자폐에 대한 인식 왜곡 우려
장애인은 천재거나 사랑스러운 미녀여야
드라마 주인공 될 수 있나 씁쓸하기도
가려졌던 여성 자폐인 다룬 작품 반가워
더 많은 자폐인의 이야기 TV서 보고파
장애인의 현실에도 관심 갖고 지지해달라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제공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제공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요즘 가장 화제의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성 변호사입니다. 드라마는 여성 자폐인의 관점으로 자폐인들의 특징, 이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를 돕고 지지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자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폐당사자와 보호자들은 어떻게 봤을까요. 먼저 드라마 속 ‘사랑스럽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애인’ 캐릭터에만 주목하면 오히려 장애에 대한 편견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 중인 아이의 아버지 ‘Doddy’님은 지난 20일 여성신문 기고 ‘나는 우영우가 불편하다’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경제활동은 고사하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일상을 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나의 보살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드라마 속 고난과 갈등은 차라리 해프닝에 가깝다. 우영우는 이미 경제활동이 가능한 전문직 사회구성원으로서, 대다수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을 극복한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살아가며 접하는 수많은 타인에게,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어야 한다. 극적 장치를 위해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징을 편의대로 섞은 비현실적인 캐릭터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을 다소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장애인 가족을 둔 독자들도 공감을 표했습니다. 장애인 오빠와 사는 loo4****님은 “장애인 가족 입장에서는 (극 중 ‘우영우’처럼) 저렇게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는 정도로 생활할 수 있는 장애인이 몇이나 될까, 왜 우리 오빠와 가족은 이렇게 힘들까, 그리고 장애인은 특출난 재주가 있어야만 공중파 주인공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싶어서 불편하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우영우 드라마는 좋다. (자폐인의) 행동 패턴도 세세하게 보여주고 여러모로 긍정적인 면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 ronn******님은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불편하다. 이렇게 극화된 캐릭터가 제 아들의 자폐 스펙트럼을 더 이상하게 보이게 한다. 제발 장애 특성을 한쪽으로 극대화한 드라마 좀 그만 만들었으면 한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또 “우영우처럼 예쁘고 천재성을 가진 자폐인이 생각처럼 많지 않다. 많은 지인들이 제 아들은 무엇을 잘하는지 묻는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 주기도 한다. 이런 잠깐의 관심들이 조금은 불편하다”고 전했습니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그간 미디어가 조명하지 않던 여성 자폐인이 전면에 등장한 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반갑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본에 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성 스즈키 나츠코 씨는 23일 여성신문 기고(일본 여성 자폐인 “‘우영우’, 살아도 된다는 용기 준 작품”)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 소식에 “충격과 행복을 느꼈다”며 “그토록 성인 여성 자폐인에 대한 서사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저는 ‘우영우’처럼 직장을 다니지 못하지만 어른으로서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매회 엄청나게 큰 용기를 얻는다.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은 저도 살아도 되는 존재인 것 같다고 느낀다”라고 전했습니다.

나츠코 씨는 일부 시청자들이 보여준 장애 차별·혐오도 비판했습니다. “‘우영우’를 아기 취급하며 귀여워하고, ‘무해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장애인’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우영우’의 증상을 흉내 내는 사람들을 그냥 비판하는 게 아니라 “ㅂㅅ” 같은 장애인혐오 비속어를 굳이 써서 욕하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성 제시카 최씨도 “‘우영우’는 판타지다. 여성 자폐인이 한국 드라마 주인공이 되려면 일단 미녀여야 하고 사랑스러워야 한다. 그런 게 씁쓸하긴 하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또 “드라마의 벽을 뛰어넘어 실제 자폐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분이 많아지면 좋겠다.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들 하시더라. 그러려면 여러분 곁의 ‘우영우’들이 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자폐인도 TV에서 자폐인의 이야기를 더 자주 보고 싶다. 그럴 수 있도록 힘이 되어 달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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