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 자폐인이 본 ‘우영우’]
천재도 아니고 사랑스럽지 않고
취직조차 힘든 게 자폐인의 현실이지만
가려졌던 여성 자폐인 다룬 작품 반가워
주인공의 고군분투 보며 큰 용기 얻어
무해·유능한 장애인만 인정한다는
일부 시청자 반응·장애혐오 욕설은 불편

자폐 스펙트럼 여성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를 키우는 아버지가 여성신문에 투고한 글을 읽고, 일본에 사는 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성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관련 의견이나 문의는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나무엑터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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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를 가진 일본에 사는 1995년생 여성 스즈키 나츠코입니다.

먼저, 대학생 때부터 여성신문을 읽고 있지만 이번에도 좋은 기사를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재밌게 봤던 저로서는 많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글을 쓰신 아버님이 겪은 불편함은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우영우’처럼 천재도 아니고 사랑스럽지도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는 이유를 한 당사자로서 말씀드리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원래 자폐 장애는 주로 남성을 기준으로 연구돼왔습니다. 진단도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채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여성의 기준에 안 맞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 성 역할 고정관념 때문에 다른 여자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을 강요받아서 남자아이들에 비해 사회성 부족 같은 증상이 가시화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지적장애가 없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경우 학교에서는 “조금 이상한 애”라는 시선을 받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사회성 부족이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그제야 진단받는 경우가 많죠.

일본에서도 ASD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 아이들에 관한 책이 많고 ASD 성인 여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낮은 것 같습니다. 한국 서적도 좋아해서 찾아봤는데 역시 ASD 성인 여성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ADHD 여성이 쓴 좋은 책은 있었지만요).

그렇기에 1년 전쯤 ASD 성인 여성에 대한 드라마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충격과 행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랑 비슷한 나이인 여성의 서사가, 픽션이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는 것이 무척 기뻤습니다. 그토록 ASD 성인 여성에 대한 서사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표된 대중문화 작품에 나온 자폐인은 거의 남성이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문지원 작가님의 전작 영화 ‘증인’에 나온 여성도 저와 나이대가 달랐으니까요.

물론 ASD는 증상이 다양하며 저와 ‘우영우’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로 인해 우울함에 빠져 정신병원에 다녔지만, ASD 진단은 못 받았습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독립하고 유학도 가고 상태가 나아져 취업도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많은 고통을 느껴 다시 정신병원에 갔더니 우울증과 ASD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원래 경증이던 ASD 증상이 우울증 때문에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신입이었던 저는 사회적 관습을 이해하지 못해 직장 상사들이 야근하는 와중에 혼자 정시에 퇴근하고 회식 자리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고립돼 결국 퇴사했습니다. 겉보기엔 ‘우영우’ 정도로 행동이 어색하지는 않았고 말도 어눌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한테 제 장애를 얘기해도 “넌 그렇게 안 보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제 장애를 부정했습니다. 그들에겐 “넌 정상이니 괜찮아”라는 뜻에서 나온 “다정한” 말이었겠죠. 하지만 저한테는 그게 너무 큰 상처가 됐습니다. 저같이 겉보기엔 “정상”인 사람은 그만큼 진단받기도 어려웠고, 그로 인해 제 고통의 이유와 제 정체성을 모른 채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겉보기엔 “정상”이어도 직장을 그만두고는 ‘우영우’처럼 매일 아침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거의 불가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소리, 사람들의 표정, 냄새 등에 압도당해 숨이 막힐 것 같아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한 번 ‘멜트다운’( 자폐인이 감각과부하,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현상 – 편집자주)이 시작되면 우울함에 깊이 빠져 눈물이 멈추지 않아 몇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 때문에 아직도 취직은 못 했습니다. 거의 포기했습니다.

저는 ‘우영우’처럼 무해하고 사랑스럽고 천재인 자폐스펙트럼 여성이 아닙니다. ‘우영우’ 캐릭터로 인해 자폐인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매우 현실적인 언행 외에 드라마 속 표현에 대한 불편함은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 불편하고 불쾌한 것은 제가 예상했던 비장애인 시청자들의 무식한 “열광”이었습니다. ‘우영우’를 아기 취급하며 귀여워하고, 기사 댓글처럼 ‘무해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장애인’만 받아들이겠다는 무식한 태도와, ‘우영우’의 증상을 흉내 내는 사람들을 그냥 비판하는 게 아니라 “ㅂㅅ” 같은 장애인혐오 비속어를 굳이 써서 욕하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자폐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당연히 압니다. 저 역시 다른 자폐인들이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작품은 대중에 미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성인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영우’처럼 직장을 다니지 못하지만 어른으로서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매회 엄청나게 큰 용기를 얻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은 저도 살아도 되는 존재인 것 같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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